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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하나님이 증인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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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913회 작성일 21-08-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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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백승철 목사
설교본문 빌립보서 1:8
설교날짜 2021-08-15


사모하는교회가 이곳에 존재해야 될 세 번째 목적은 하나님이 증인되는 교회로의 지향점입니다.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God is my witness(BBE)”(빌1:8). 영어성경(KJV)은 “God is my record”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나의 기록자입니다. 사모하는교회와 성도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기록자, 저자 이어야 합니다. 이런 표현은 사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비슷한 유형으로 하나님 이름을 걸고,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고, 성경위에 손을 올린다든지, “내가 장로, 목사인데” 직분을 이용해서 죄를 숨기거나 잘못된 것을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필자의 성경 갈피에 빛바랜 신문 칼럼 조각이 있습니다. 1999년 8월 26일자 중앙일보 6면에 ‘거짓말 게임’으로 이름 붙은 칼럼입니다. 자그마치 22년이 지난 글입니다. 아직도 그 내용이 생생한 이유는 사흘간 국회에서 열렸던 옷 로비 청문회에 나왔던 사람들이 모두 교회를 다닌다고 스스로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닌다는 이유가 죄를 숨기는 작업의 도구였습니다. 칼럼의 일부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중략) 헌데 흥미로운 것은 십계명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일수록 하늘과 하나님을 자주 들먹인다는 점이다. “하늘에 맹세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따위의 전제가 그렇다.

(중략) 주인공들은 모두 독실한 신자임을 차처하면서 똑같은 사안을 놓고 하는 말들이 서로 달라 어느 한쪽은 거짓말이 분명한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성경에 손을 얹고 증언하건데 자기가 옮다고 강변한다.

(중략) 하나님을 내세우면서 거짓이 난무하니 하나님이 내려다본다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거짓말을 해도 하나님은 자기편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기독교를 조롱하고 모든 신도를 분노케 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든지 교회를 떠나든지 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인 부흥사의 설교보다 가슴을 찌릅니다. 칼럼의 저자가 성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의 낯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바울 사역에 있어서 자긍심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종의 신분이 자랑스럽다는 고백입니다. 사실 종이라는 단어는 노예로 번역되어야 원문 성경과 가깝습니다. 노예는 인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물질이었습니다. 노예의 생명과 삶은 주인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 노예의 신분을 자랑하는 바울의 심정이 특별합니다. 노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예입니다. 그러나 목회자, 장로, 집사,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바울은 “God is my witness”라는 표현을 로마서 1장 9절, 고린도후서 1장 2-3절에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For neither at any time used we flattering words, as ye know, nor a cloke of covetousness; God is witness: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살전2:5).” 여기서도 영어성경에는 “God is witness”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으로 아첨의 말(사람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나 탐심의 탈(욕심의 가면으로 내 이익을 위하는 것)을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기록입니다. 성도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증인이어야 합니다. 사모하는교회를 하나님이 증인을 서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역, 헌신, 봉사, 선교, 전도, 믿음까지 하나님은 반드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보증이 되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순교 직전에 하늘 문이 열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집사님의 모든 순간을 보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증하는 사역위에 여러분의 길이 힘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7장은 예수님이 산상에서 가장 긴 설교를 했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A great number will say to me on that day, Lord, Lord, were we not prophets in your name, and did we not by your name send out evil spirits, and by your name do works of power?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주의 깊게 보십시오. “많은 사람”입니다. 소수의 무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사역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선지자(예언적인 일) 사역,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 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보고 했습니다. 모두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각각 일한 내용의 근거로 “주의 이름으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초자연적인 사역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 기적과 같은 신비한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 사역에 대해 보증, 증인이 되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And then will I say to them, I never had knowledge of you: go from me, you workers of evil.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NEVER”라는 단어가 이렇게 강렬한지 몰랐습니다.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 사역을 말합니다. 게다가 주의 이름으로 행한 그 모든 사역이 불법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초자연적인 사역을 감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 판결에서 사기죄가 첨가되었습니다.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역과 성도의 헌신이 반드시 하나님이 증인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초자연적인 일을 나타내도 모두 불법입니다.


나타나는 현상 이를테면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나님의 일을 구별하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일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기적과 신비가 하나님이 증인(보증)된다는 것을 보증하는 기준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천국입성을 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뜻에 걸립니다(마7:21). 즉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증인을 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바울의 아시아권 사역을 막고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게도냐로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도 않는 사기꾼에게 하나님이 그 사역을 보증, 증인 설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증인되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 즉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의 특징을 다음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It is the same to me if I am looked down on or honoured; everywhere and in all things I have the secret of how to be full and how to go without food; how to have wealth and how to be in need.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문장은 본 절에서만 사용되는 문장입니다. 다시 직역하면 “비밀을 전수받다”입니다. 하나님이 증인을 서는 교회와 성도에게 알려주는 비밀입니다.

부정적인 단어 > 비천 + 배고픔 + 궁핍 = 객관적 시각으로 살 소망이 없는 환경입니다. 안 되는 상황입니다. > 그렇게 판단한 결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증인되는 교회와 성도의 자세입니다.
긍정적인 단어 > 풍부 + 배부름 = 뒤로 넘어져도 너무 잘되는 환경입니다. > 그렇게 판단한 결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증인되는 교호와 성도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은 안 되고 잘되는 현상에 대해 판단한 결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I am able to do all things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입니다. 그 사역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이 증인이 될 이유입니다. 결국 사모하는교회가 이곳에 존재해야 될 목적은 보편적 교회론적인 사명입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추구해야 될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 보편적인 사명조차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보편적인 사명을 회복시키려는 몸부림이 사모하는교회의 지향점입니다.

교회를 회복시키는 사모하는교회, 그 사명을 위해 애써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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