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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포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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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하는교회August 07, 2021 에피포도에 관하여 _ About έπιποθϖ epipodo
    https://m.blog.naver.com/usaep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에피포도엽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 [έπιποθϖ]로 “사랑하다 I love. 사모하다 I yearn for. 그리워하다 I miss”의 뜻이다.에피포도 [έπιποθϖ epipodo] 언어가 언급된 보편적인 원문을 찾는다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이다.신약성경의 원어는 헬라어로 되어있는데 빌립보서 1장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For God is my record, how greatly I long after you all in the bowels of Jesus Christ.”여기서 에피포도 [έπιποθϖ  epipodo]는 “사모하는지”의 동적인 개념이다.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리워할 대상이 존재한다면 서로 공감하는 정서적 일치점이 있을 때이다. 그런데 에피포도 [έπιποθϖ  epipodo]는 그 이상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사랑할 수 없고 사모할 수 없으며 그리워할 이유 없는 대상을 향한 몸부림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 대상을 향해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지극히 동적인 가슴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정서의 기준과 설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자료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자아를 통해서이다. 바울은 자신의 심장이 아닌 이미 입증된 객관적인 정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세상이 에피포도 [epipodo έπιποθϖ]와 같다면,미워할 대상을 사랑하며,사모할 가치 없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며,그리워할 이유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며,그 도구가 문학, 예술, 음악, 신앙, 그 무엇이라도 괜찮다. 한 번쯤 내 심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객관적인 정서를 얻는 일에 애쓰다보면 보고 듣고 읽는 모든 일상과 사람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 질 것이다. 오늘 밤 한 번 더 고민해야 될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글 쓰는 것에 관하여.έπιποθϖ 에피포도 Epip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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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February 27, 202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시詩Poem 기억의 흔들림 • 헤어지거나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 곁에서
    아래 링크를 열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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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12, 202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두번째 계절] 물들이다 by 조미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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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01, 202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올해도 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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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September 19, 2023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EPIPODO POSTCARD
    https://m.blog.naver.com/usaep/223248765633 아래 링크를 열면 에피포도엽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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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une 30, 2023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평범한 하루가 아주 특별하기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평범한 하루가 아주 특별하기를]호시노 토미히로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며 시인입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된 지 두 달 만에 체육 동아리 활동을 지도하다가 경추손상으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 위쪽뿐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는 생의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져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지만, 다시 일어나 새 인생의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자작시를 적으면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사연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찬사를 받았습니다. <꽃의 시화전> 이름으로 200여 차례 열린 그의 전시회는 매번 성황을 이루었고, 지금도 그의 고향집 부근에 건립된 미술관에는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 매일초 by 호시노 토미히로 매일초는 협죽도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입니다. 매일 새로운 꽃이 100일 이상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모양은 바람개비를 닮았고 꽃말은 “즐거운 추억, 당신을 사랑합니다.”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봉선화, 빙카라고도 불립니다. 사실 따지도 보면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며 신비입니다. 숨 쉬고 있다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걸을 수 있다는 것, 들을 수 있다는 것,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는 것, 수십 년 전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랍스터 구이가 저녁시간에 맞추어 생각나는 것, 샤워할 수 있다는 것, 자동차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일상은 돈 주고 사서 만들어 지는 작품이 아닙니다. 만약 값을 지불하고 임대해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입니다. 몸에 이상이 없는 한 그런 모습은 가장 보편적이며 평범한 범주에 속합니다.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라는 이유로 감사할 이유를 잊고 삽니다. 평범함의 함정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무감각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목적 있는 감사가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별 다를 것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의 조건과 이유가 날마다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느낌 없이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평범한 하루가 여러분에게 아주 특별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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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une 30, 2023 예배에 내 인생 모두를 걸어야 합니다
    토미 테니(Tommy Tenney)는 3대에 걸친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토미는 16세 때 설교를 시작해 약 10년간 목회 사역을 했습니다. 3대에 걸친 목회자 집안이라는 유산은 토미에게 사역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주었습니다. 그는 20여 년 동안 미국 전역과 40개국 이상을 방문해서  순회 사역을 했습니다. GodChasers Network(www.godchaser.com) 사역기관을 창설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저서와 강연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권의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그의 책들은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에서 언급한 내용을 토미 테니 음성으로 들어보겠습니다. 1.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푹신한 좌석과 팝콘이 있는 영화극장 정도로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의 방해나 개입도 없이 편안하게 앉아 있기를 원한다. 마치 우리는 고객이고 그분은 멋진 연기자인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예배는 남들의 예배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드리는 것이다. 2.우리는 유익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전문적인 예배 자들에게 섬기는 일을 대신하도록 한다.  우리 자신이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 않는가? 누구든 하나님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이 높이신다.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면 그것을 우리와 나누도록 한다. 그저 하나님의 임재를 돈 주고 사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예배의 대가를 치른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팔에 안으셔서 영원한 관점을 허락하실 것이다. 3.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의 필요에 몰두하거나 서로 반갑게 인사하느라 하나님과의 약속 장소가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때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머무는 순간을 우리가 놓치는 이유는 교회 놀이를 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 분을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거룩한 척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슬리는 이야기이다. 4.당신은 예배자로 부름을 받고 태어났다. 나는 감옥에 있을지라도 예배할 것이다. 나는 실패할지라도 예배할 것이다. 나는 고통 중에도 예배할 것이다. 나는 어두움 속에서 미래의 불확실함 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전히 예배할 것이다.토미 테니가 언급한 예배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급변한다 할지라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예배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이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 중심의 무게가 예배드리는 청중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잘 드린 예배, 하나님이 받는 예배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다음 성경을 소리를 내어 읽어 보십시오. For this reason I make request to you,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hat you will give your bodies as a living offering, holy, pleasing to God, which is the worship it is right for you to give him.“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예배를 드리는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예배의 향방입니다. 그것도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제물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배에 내 인생 모두를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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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사모하는교회June 30, 2023 오이나무
    [오이나무]오석환 목사님(Robert Oh. 시인. 교수)은 일 년 두 차례 선교지(캄보디아)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면 항시 사모하는교회를 방문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목사님 말씀 중에 오이나무 이야기가 어찌된 일인지 머릿속을 헤집고 있습니다.   목사님 집 텃밭에 오이나무를 심고 그 날 주일에도 그 텃밭에서 수확한 오이, 고추를 가지고 와 식사 시간에 함께 나눴습니다. 목사님이 심은 오이나무는 총 아홉 그루입니다. 목사님은 심은 오이나무에 일일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 구순이로 이름 지었습니다. 심겨진 오이는 오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이 주인에 의해 무조건 심겨졌으며 이름 역시 오이나무와 상의해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주인인 목사님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시간과 시간이 덧칠해지면서 오이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는 빛 좋은 명당자리에 심겨졌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은 오이를 많이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순이입니다. 햇빛도 잘 들지 않고 그늘 진 가장 열악한 장소에 심겨졌습니다. 주인은 이미 구순이를 심을 때 일순이, 이순이 보다 오이를 많이 맺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단 하나 오이를 영글게 한다 해도 기적입니다.   목사님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 후 심은 오이나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곁에 잡초를 뽑아 주고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해 손때를 묻혔습니다. 일순이 부터 순차적으로 대화를 하다가 구순이 앞에서는 더욱 목사님 마음이 술렁거렸습니다.  힘겨운 환경과 열악한 공간에서 애를 쓰며 오이 열매를 맺기 위해 몸부림치는 구순이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살피며 마음을 퍼 날랐습니다. 당연히 그 장소에서 열매가 맺히고 안 맺히고는 주인이 더 잘고 있는 지식입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구순이는 오이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에 오이를 하나라도 영글게 하려고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목사님은 한 번도 구순이가 일순이처럼 많은 오이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구순이가 오이를 일순이 보다 더 많은 오이를 생산하려면 주인이 그 자리를 바꿔 옮겨심기 까지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구순이가 존재해야 될 이유는 텃밭을 위해 주인이 그 장소, 그 공간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구순이가 사라지면 텃밭이라는 이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알고 있는 공간, 주인이 알고 있는 시간, 주인이 알고 있는 열매, 주인이 알고 있는 이름, 주인이 알고 있는 수확, 주인이 알고 있는 애씀, 주인이 알고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구순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오이를 먹다가 문득 내 자리가 궁금해 졌습니다. 구순이 자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올려본 하늘이 반쯤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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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une 30, 2023 별들이 하늘에 걸려 있다는 것이 학습되어질 때
    [별들이 하늘에 걸려 있다는 것이 학습되어질 때 | 사진배경 Joshua tree National park ]서러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흑인 여성이 세살이나 되었을까, 아이를 품에 안고 애절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지금 배는 호수 위를 목적지를 향해 느릿, 느릿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곁에 있던 그는 여인의 울음소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 말고 또 다른 애들이 있었는데 지금 요만큼 자랐을 때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아이도 곧 죽을 것입니다.”  그는 여인의 울고 있던 이유를 듣는 순간 이건 너무 해학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웃음이 밖으로 튕겨나와 겨우 혀를 깨물어 잠재웠습니다. 그래서일까, “이 아이는 절대 죽지 않아요.” 화들짝 놀란 여인은 “정말이냐”고 확인한 후, 순간 울음소리가 호수 위를 동그르르 굴러 배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여인의 동네는 난리가 났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 신비한 사건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그는 여인의 소리가 수북이 싸이는 동안 가슴 떨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이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점점 깊어 갔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세요.”세월이 속도를 내듯 아이는 무럭무럭 잘도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프리카 선교는 뜻하지 않은 신뢰를 그 곳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밀물로 다가오던 밤, 하늘 위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방 익어갔습니다. 침묵할 수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그들에게 말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어느새 그의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저 별들을 만든 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그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는 그렇게 별헤는 밤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어릴 적 그렇게 많은 별들이 하늘에 걸려 있다는 것이 학습되어질 때, 얼마나 울었던 지, 휘청거리는 모습에 두 번 놀란 기억이 흔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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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une 08, 2023 사막에서의 편지
    [사막에서의 편지] <사막에서의 편지>는 C. 카레토(Carlo Carretto)의 저서입니다. 필자는 이 책을 서재 책상 바로 뒤에 두고 틈나는 대로 읽어 보기를 좋아합니다.      카레토는 신부이면서 이태리에서 유능한 교수였습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적인 정서를 글로 옮겨 놓았습니다.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처음과 끝이 존재하는 우주적입니다. 문제는 그 우주적인 세계관을 종교적 틀에 가둬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우주적이라는 것을 삶에 적용해 보면 편견이 없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편견이 있으면 신부님, 스님이 쓴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을 뿐 더러 그런 분들과의 소통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신앙인은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사람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제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사막에서의 편지>에 등장하는 저자의 숨소리를 의역하지 않고 직역에 가까운 문장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조금도 서두르지 않으신다. 시간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우리는 언제나 침묵 속에 살고, 또 침묵에 대한 맛을 아는 것을 배운다.”“하나님의 부르심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 부르심은 신앙의 어둠 속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목소리는 아주 가늘고 조심스러워 전적으로 내적 침묵이 요구 된다.”“기도는 단순하게 하고 지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샤를르 드 푸코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모든 일에 있어 말째가 되어라’고 권고 하였다.”“기도는 같은 소리와 같은 내용의 반복이더라도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다.”“사랑하지 않고 또 사랑할 수 없다는 그것이 문제이다.”“나의 무능은 하나님의 능력을 잘 드러내고, 나 ‘피조물’의 빈약함이 창조주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한다.”“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날 밤 필자는 카레토가 걸어갔던 흔적을 더듬어 그 길을 찾아 발걸음을 포개는 연습을 했습니다. [사막에서의 편지] ‘C 카레토’로부터끝으로 숨어버린 바람 일어나허리 잘린 모래낙타 등 골짜기 사이로몸을 기대고 흩어지지 않도록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사막의 밤은 소리 묶는 무덤이다늘 침묵 속에 더위 먹은 어둠은 한 낮낙타 등 골짜기로 흘렀던모래로 몸을 씻고다시 침묵을 벗으면입술에 떠오른 사막에도 길이 있다없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사랑은 무엇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그곳에 갈 수 없거든가슴 마지막 언저리에 사막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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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une 21, 2022 아버지
    [아버지]호수를 끼고 병풍으로 산이 둘러있습니다. 겨울이면 호수가 얼어 유년시절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풍경 좋은 곳은 어디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인위적으로 길을 닦고 아스팔트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치고 사람들이 오고 간 흔적에 호수는 몸살을 앓아 매년 늙어갔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현지인 건물을 렌트해서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했습니다. 약 3개월 호수가 얼게 되는 겨울은 장사를 중단하고 휴식기를 보냈습니다. 호수에 띄워졌던 배들도 겨울에는 육지로 올라와 뒤집어져 작은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 해 겨울이었습니다.   주인집 아들이 일곱 살 꼬마에게 와서 그 가게를 털자고 꼬드겼습니다. 손해 볼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집 아들은 겨울에 비어있던 가게로 들어가는 길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가게에 놓여있던 과자, 사탕, 껌, 음료수를 먹을 만큼 가지고 나와 뒤집어 놓은 배 공간으로 들어가 배를 채웠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다음 날도 똑 같은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가는 줄 몰랐습니다. 겨울이 겉치고 봄이 성큼 눈썹위에 앉았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우리는 여전히 그 날도 주인집 가게를 털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은 서울 사람이 다시 장사를 오픈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서울 사람이 다시 문을 열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 선 순간 수북했던 과자가 사라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과자 봉지가 길에 쌓여 드문, 드문 길을 연결해 놓은 곳 끝까지 가다 뒤집어 진 배 안에서 과자를 먹던 우리를 그 날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과자 봉지를 길거리에서 뜯어 버린 것이 결정적으로 꼬리 잡힌 원인이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울 내내 바람에 흩어진 과자 봉지가 길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주인아저씨는 시골에서 가장 욕을 찰 지게 잘했으며 거칠고 난폭했습니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욕을 창작해서 주인아저씨는 체포한 자신의 아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꼬마는 뒷덜미를 잡혀 아버지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가는 동안 그 청명한 하늘이 먹물에 뒤엉켜 어둑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일어날 한 눈금도 모를 찰나의 시간이 훅 지나갔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수위 높은 무서운 공포가 머릿속까지 헤집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날의 풍경이 필자에게 무서운 공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 보다 무섭고 공포스러운 기억이 없습니다.   “나는 죽는구나. 아버지 앞에 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한 걸음에 죽고 한 걸음에 살고 단 순간도 살아날 소망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아저씨는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입에서 욕이 튕겨 나왔습니다. 땅으로 또르르 굴러 날카로운 거대한 바위가 되었습니다.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남의 집 가게 과자를 훔쳐 먹게 하느냐?”   그 정도는 점잖은 표현이었습니다. 이내 주인아저씨 얼굴은 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온 동네가 폭풍우에 밀려가듯 목소리가 거칠어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쥐구멍이라도 찾는 시늉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반응이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주인아저씨 말에 간격이 잠시 벌어진 틈을 타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애 놀라니까 조용히 하세요.”   소리를 의심하는 버릇이 그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들은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그렇게 크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뜻밖의 아버지 말에 한 발자국 물러섰습니다. 그 순간을 아버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었기에 그러시냐? 내가 다 물어 줄 테니 계산해서 가져오세요.”   단호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것을 적어도 체포된 아들 신분에서 인정했습니다. 최강 부자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 아버지 언어가 하나, 둘 꿰맞추어지는 동안 머리 회로가 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진동이 가슴골을 치고 올랐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떠나고 나의 운명이 흔들렸습니다. 세상에 오직 아버지와 나만 존재하는 가장 어색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나에게 고정시켰습니다. 조금도 흔들리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시야에 나는 꼼짝없이 묶여버렸습니다.   곁눈질 하던 나는 땅이 파일정도로 고개를 떨궜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리를 떠나 잠시 후 콜라병을 하나 들고 오더니 내 손에 올려놓았습니다.   “콜라병 들고 서있어.”   콜라병이 허공에 솟은 두 손 위에 누웠습니다. 아버지는 내 죄를 추궁하거나, 다시 혼 내키거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침묵은 52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면 어김없이 콜라병을 잡았던 손이 허공에서 내려왔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면 헛기침을 해서 다시 허공으로 손이 쏜살같이 솟구쳤습니다.   훔쳐 먹은 과자 값을 생각하면 그 짧은 시간에 콜라병을 들고 서있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내 인생에 기적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애 놀라니까 조용히 하라”는 아버지 마음을 제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들 체면을 살려주는 아버지의 심장이었습니다. 가장 포악한 욕쟁이 아저씨로부터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분리 될 수 없는 필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버지 스스로 아버지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아버지의 체면이 서고 나로 인해 아버지의 자존심이 구겨진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거운 눈물이 강을 이룹니다.   오늘,   아버지 걸음과 뒷모습이 포개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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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February 24, 2022 우체국 Post Office
    우체국 Post Office     기차 길을 끼고 두 블록 동쪽으로 걷다보면 낡은 우체국 하나 있습니다. 모든 동네가 도시화에 접어들었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유년 시절 한국 시골 동네 모습이 내려앉은 풍경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듯 가끔 자신의 존재를 긴 호흡으로 쏟아내는 기차 기적소리도 화폭에 그려지는, 무언가 아쉽고 그리워할 것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선율로 들립니다.   하지만 요즘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우정국에서 점차적으로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우체국을 폐쇄하겠다고 합니다. 필자 집 근처 허름한 우체국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 사용을 꺼리고 있다는 것과 일치합니다. 우체국 가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손바닥 보다 작은 상자 안에 들어있어 나름 호주머니 속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요리합니다. 요리할 뿐만 아니라 각자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각자 소견대로 행했던 사사시대처럼 말입니다.   전에는 손 편지만 가능했던 소식도 손가락 끝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사람과 사람사이 가슴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은행업무나 페이먼트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 졌습니다. 점점 우체국 가는 일이 없어진 셈입니다.   사라지는 것에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하며 잊히기도 합니다. 필자는 어떻게 하든 그 우체국을 살리기 위해 힘겹지만 우표를 사서 여전히 옛날 방식대로 우편으로 가능하면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우체국 하나 사라지는 것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정성과 노력이 담겨있는 마음이 무너지는 슬픈 전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총회기간 중 변의남 목사님을 통해 목사님의 아드님으로부터 직접 손으로 쓴 따뜻한 감사 카드 한 장 받았습니다. 얼마 전 결혼식에 필자가 참석한 것에 대한 고마운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는 필자에게만 띄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결혼 예식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띄웠을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오랜만에 가슴 찡한 서정시 한 편 비어있던 가슴 구석을 가득 메웁니다.   빠른 것이 때로는 유리할 때도 있지만 항시 빠른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상한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사람들은 더욱 조급해집니다. 더 빠른 것에 대한 욕구가 급해집니다. 빠른 것을 통해서는 띄우는 마음과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Take your rest in the Lord, waiting quietly for him.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37:7).”   잠잠히 기다리는 것도 손쉬운 일이 아닌데 또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나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세월이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낸 다섯 번째 계절입니다.   올 한해도 힘겹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월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쯤에서 천천히 가는 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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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19, 2022 그리움 Longing
    [그리움 Longing] 추억 [Reminiscence]과 그리움 [Longing]의 경계가 아슬하다. 엇비슷한 것 같지만 추억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그 시절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리움이란 "보고 싶어 그리는 마음 곧 사모의 정"을 뜻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에 함몰된다. 아무래도 추억 보다는 그리움이 더 애틋해 보인다. 요즘은 "사모하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고어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고어처럼 굳어버린 그 단어를 좋아한다.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중 깊은 마음의 넓이 때문이다. 사람, 우리 모두는 그리움의 추억이 있다. 아니면 당신은 누군가에 있어 그리움의 대상이다. 사모할 만큼 그리움이란 그냥 문득, 지난 그 시간과 공간에서 보고 싶은 얼굴이다. 바로 오늘, 그 무엇으로 조금이라도 사모의 정이 되살아나 여기 시간의 틀을 깨고 그곳에서 또 다른 추억으로 엮었던 너의 이야기를 오늘 가슴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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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19, 2022 보편성 Universality
    [보편성 Universality _ Do not believe true everything that is visible | 사진배경 • Maine, taken by Young Shin]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보이는 것이 참이 아니라면 그 믿음은 진실이 아니다. 현상 자체가 참이 아닌데도 믿게 되는 것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있더라도 주관적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각화되어 보이는 수많은 형상이 있다. 이를테면 사랑, 우정, 용서, 행복, 기쁨, 따위는 보이지 않는 추상명사가 시각화 된 동적인 개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만 파단 하는 실수다. 그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불행하게도 그 경험은 참을 구분 짓는 객관적 자료가 될 수 없다.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다양성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랑은 ... 이다”는 정의를 한 문장으로 내리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 정의가 다양성을 갖고 있더라도 사람의 보편적, 일반적 정서의 사유에는 일치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객관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과 정서의 일치점이다. 좀 더 예를 들어보면 신앙인의 객관적 거울은 성경이다. 성경의 내용 중 비이성적인, 신비적인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부분도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해석에서 그 닥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크리스천은 모두 지구를 떠나 살아야 한다. 성경은 지극히 사람을 보편적인 기준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워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크리스천에 대한 이해도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서이다. “믿는 사람이 일반사람들 보다 못해”라는 모욕적인 문장은 일반적이며 보편적 기준 정서에도 크리스천의 생각과 행위가 못 미쳤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정서, 요즘 인간이 잃어가는, 아주 많이 흔들리는 객관성이다.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기준이 되는 보편성, 정치경제, 사회, 모든 영역이 보편적인 판단과 기준에 의해서도 이해가 되는, 그런 정서의 풍경을 힘들겠지만 혼자만이라도 애써볼 생각이다. 그런데 요즘 그 길에 함께 동행 할 사람들이 눈에 띄어 외롭지 않을 이유로 인해 참 많이 행복하다. 그 행복이 오늘 서있는 자리에서 가슴이 젖는 이슬로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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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19, 2022 게리 뮤지엄 Getty Museum | 아이리스 Irises
    [게리 뮤지엄 Getty Museum | 아이리스 Irises, by Vincent Willem van Gogh]지난겨울 게리 뮤지엄(Getty Museum)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모네(Claude Monet),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작품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모네 작품은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위키백과사전(Wikipedia)에는 고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빈센트 빌럼 반 고흐(네덜란드어: Vincent Willem van Gogh 핀센트 빌럼 판 호흐),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는 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의 작품 전부(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를 정신질환(측두엽 기능장애로 추측됨)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만들어냈다. 그는 생존기간 동안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후에 비로소 알려졌는데, 특히 1901년 3월 17일 (그가 죽은 지 11년 후) 파리에서 71점의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커졌다.”고흐는 37세로 정신병을 얻어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단 한 문장으로 정리된 고흐의 약력입니다. 고흐가 어떤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가늠하는 것은 나중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안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세월을 필자의 흔적을 더듬어 올라가 한 문장으로 쓰고 있습니다.**게리 뮤지엄에 있던 고흐 작품 중 대표작인 아이리스(Irises)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Irises is one of several paintings of irises by the Dutch artist Vincent van Gogh, and one of a series of paintings he made at the Saint Paul-de-Mausole asylum in Saint-Rémy-de-Provence, France, in the last year before his death in 1890.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고흐가 그린 아이리스 작품은 단 한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게리 뮤지엄에 있는 아이리스입니다. 그 작품은 고흐가 1889년에 자살하기 직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그린 작품입니다. 참고로 그 아이리스 작품은 198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억 2000만 프랑(약 5390만 달러, 768억 정도)에 거래된 작품이기도 합니다.아이리스 작품 경매 가격을 알고 나서 또 한 번 심장이 떨렸습니다. 필자는 1987년 기준으로 약 5400만 달러 그림을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사진도 가장 근접 거리에서 촬영도 했습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비싼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처음 이었습니다. 그것도 대형 그림이 아니라 보통 그림 액자 크기 작품입니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작품을 게리 뮤지엄(입장료 무료)에서 너무 손쉽게 보고나니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사실 필자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얇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혹시 모조품이 아닐까?**자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이리스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어떻게 세계 역대 그림 경매사상 6위에 이름이 올라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23회 에피포도신인예술상 미술을 수상한 황지니 화백님 작품 중 <하늘로 뿌리 내리는 나무> 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뜻 보고 눈에 확 들어오는 강렬한 감정도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아마 고흐 펜클럽이 있다면 필자는 댓글로 몰매를 맞을지 모릅니다. 여튼 작품을 감상한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고의적으로 필자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의도는 결코 없습니다. 그렇게 유명하고 비싼 그림을 눈으로 보고도 필자가 느끼는 감정의 관념을 버릴 수 없어, 혹시 놓치는 정서가 있을지 몰라, 보고 또 보고 반복해서 보고 다시 현미경 관찰을 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작품에 들어있는 수많은 아이리스 꽃 모양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있었습니다. 하나도 같은 꽃잎이 없었습니다. 아이리스는 보라색 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청색, 노란색, 흰색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라색 아이리스 숲에 가장 크게 묘사된 흰색 아이리스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고흐가 정신병을 앓는 가운데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상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정신을 어찌하든 바로 잡아 보려는 고흐의 숨소리가 흔들리는 흰색 아이리스 꽃향기에 담긴 듯 보입니다.아이리스의 꽃말은 “변덕스러움과 사랑의 메시지, 무지개 여신, 사랑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속히 시드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로마시대에는 향수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고흐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피어있는 아이리스 꽃 밑 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시든 낙엽 같은 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시들고 있는 아이리스, 곧 떨어지려는 아이리스,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해 보려는 듯 힘겹게 잎줄기에 붙어 있는 아이리스, 그 꽃 숲에서 눈에 뛰게 도드라진 흰색 아이리스, 바람 부는 대로 휘어진 아이리스,부는 바람의 물결을 거부 하고 허리 굳히지 않고 꽂꽂한 아이리스, 노란색 꽃들과 주위 풍경 계절을 아우르는 아이리스, **피어나는 꽃들과 시들어 가는 꽃과 아예 떨어져 낙엽이 된 슬픈 이야기, 다른 꽃의 사연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고흐는 갈망했을지 모릅니다.        작품에는 작가의 메시지와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림을 세부적으로 퍼즐 조각처럼 분류해서 다시 부분 부분 맞춰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분리된 퍼즐 조각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어느 퍼즐 조각 그림은 어둠, 낙엽, 먼지, 시듬, 그림이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보기 싫거나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야 될 이야기가 담겨있는 조각일 수 있습니다.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흉측한 모양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려면 모두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그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들입니다. 유명한 작품에는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그 조각으로 인해, 그렇다면 세월의 끝으로 몰리기 전에 삶이 작품이 되게 할 이유가 분명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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