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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포도예술과문학

수필・칼럼 기독문학 제20집 특집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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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035회 작성일 21-08-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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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백승철
작품명 행위로 설명되는 글
제작년도 2021-06-05

행위로 설명되는 글



1 분 석


논평은 글이나 말 또는 사건 내용에 대해 논하여 비평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서평과 평론과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평론은 작품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작가는 좋은 평론가를 만나야함)이며 서평은 책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소개하는 관점입니다. 필자는 여기서 복합적으로 논평, 서평, 평론을 종합해서 다룰 것입니다. 이번 기독문학은 다영항 많은 주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기독문학을 전체적으로 분석을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앙적인 글(찬양, 선교, 헌신 등 모든 것을 포함) - 수필(6) / 소설(1) / 시(11)

> 일반적인 글(전혀 기독교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형식) - 수필(5) / 시(47)

> 혼합적인 글(일반적 현상에서 기독교적인 한 두 단어를 설명되는 경우) - 수필(1) / 시(5)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작품 (1)


수필은 내용면에 있어서 신앙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시는 일반 시 형식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기독시의 방향이 긍정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습니다. 이유는 신앙인이 일반시를 쓴다는 것은 일반 시와 경쟁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이 쓴 일반적 작품이 일반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어 볼 때 그 수준이 대등한가?


결론은 불행하게도 작품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독자와 문단에서 조차 별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목사가 쓴 글은 질이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유는 종교성에 기초해서 종교적 언어와 용어, 무작위 성경인용, 읽는 독자를 향해 설교, 권면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글은 기독교인만이 읽는 전유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2. 대 책


이런 문제점을 기초해서 최소한의 해결 방법을 생각하려 합니다.


1). 열심히 연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신앙적인 문학의 관심을 벗어나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2). 질적으로 낮은 일반 시 쓰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신앙시가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 어려운 작업이 신앙 시입니다. 그러나 신앙 시의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글의 소제, 주제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 변화의 다양성 숙지해야 합니다. 문학적 양태, 형식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21세기에 60년대 형식으로 독자를 설득하려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필자는 이번 문집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작품에도 불구하고 형식이 일률적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작품은 눈에 띄게 질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3. 실 례


물 첩첩

물 첩첩

천 질 만 길 고요


아 – 그 밑 거기에도 목숨 있을까


숨 탁탁 막히는 비밀창고에

그 분 홀로 앉으시어

바다 밑 수 만리를 그 분 홀로 걸으시어

들어오고 나가는 문도 없는 그 곳을

그 분 홀로 나드시어


푸르게 푸르게 숨 풀어 놓으시고

오늘도 홀로만 출렁이시는가


                                                            - 최선호의 ‘바다’ 전문


필자는 위와 같은 시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로 이름 붙입니다. 즉 신앙시도 아니며 그렇다고 일반 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일반의 중간 영역에 속하는 시입니다. 이와 같은 시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최선호의 ‘바다’를 좀 더 깊게 풀어 보겠습니다.


첫째, 읽으면 읽을수록 시어가 액즙 같습니다. 불필요한 조사를 제어하고 시어를 갈고 닦아 조각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어와 시어 사이에 긴장감이 돌고,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듣는 듯 현실감과 생동감, 리듬감이 있습니다.


둘째, 주어의 선택이 탁월합니다. 만약에 ‘그 분’을 당신 혹은 하나님으로 표현했다면 이 시는 완전 졸 시에 불과합니다. 시는 언어의 함축과 독자의 상상을 최대한 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일반화 과정을 거쳐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보통 하나님은 하늘에 존재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 하나님이 바다 속으로 공간 이동되고 있습니다. 신선한 발상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 즉 어디나 계시는 분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하는 일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움직임을 시인은 “앉으시어, 걸으시어, 나드시어”로, 그 하나님이 파도를 만들고, 숨소리로 바다색을 채색하는 능력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을 통치하는 주권자인 하나님을 ‘바다’를 도구로 표현하는 기술입니다.


다섯째, 독자에게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아마 일반 독자가 이 시를 읽었다면 그 분이 누군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이 누구 길래 바다 속을 거닐고 드나들고 그 분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4. 기독교문학의 정의와 방향


 홍문표 시인은 “기독교문학은 구원의 문학과 영성문학”으로 정의하며, 김신웅 시인은 기독교문학의 방향으로 ”일반적인 상황에 기독교 정신이 내재되게 해 독자층을 확보하자”고 말합니다. 방동섭 시인은 기독교문학의 방향은 주제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완화 시인은 기독교문학이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학으로 목적의식과 메시지가 분명한 문학으로 표현합니다. 김주경 시인은 “구속을 받아들인 문인을 통한 문학”이 기독교문학으로 정의합니다.


유재철 시인은 기독교문학은 하나님 창조에 목적 두는 것으로 그 가치관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며 창조된 세계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문학으로 말합니다. 최선호 시인은 문학적 구분 자체가 부자유한 것으로 일반문학이 독자만 대상으로 한다면 신앙문학은 절대자와의 관계로 영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최고의 가치가 있는 문학으로 정의합니다.


 

5. 결 론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두 가지로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언어자체로 설명 없이 이해되는 언어로 양복. 피아노. 마이크, 의자와 같은 언어입니다. 또 다른 언어 형태는 반드시 설명해야 이해되는 언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 믿음. 온유. 절제. 기쁨. 자비. 소망과 같은 언어로 성경 안에 가득가득 차있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를 설명하는 방법은 행동.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을 행위로 설명했습니다.


오래 전 필자는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체한 요시마쓰 고오조오 시인 초청 ‘세계작가와의 대화’에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마쓰 고오조오 시인은 그 날 시를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리스천 작가는 행위로 설명되는 글을 써야합니다. 문학적으로 말하면 진실성입니다. 행위(진실)가 언제나 글보다 앞서야 합니다. 진실성이 없는 글은 작품이 아닙니다. 행위로 설명하지 않아도 글을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동은 줄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 작가는 독자에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감동을 주는 작가이어야 합니다. 그 감동을 주는 것은 행위로 설명되는 글입니다. 글은 객관적 자료(주관적 감성, 정서)에 자료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 객관적 자료가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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