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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포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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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January 19, 2022 나를 용서해줘 Forgive me
    [나를 용서해줘 Forgive me _ Laura Stanley | 그림 • 강미란]한 사람도 아니고 서른 두 명이 죽고 29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 섰습니다. 하지만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 총기난사 사건의 현장인 노리스 홀(Norris Hall) 잔디광장에는 서른 세 개의 추모석이 있습니다. 조승희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석도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탠리가 처음 조승희 추모석에 꽃과 편지를 놓고 가면서부터 서른 두 개의 추모석 앞에 꽃과 편지가 쌓여가듯 조승희 추모석 앞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갔습니다.  “이틀 전 이곳에 왔었는데 유독 승희 추모석만 썰렁했습니다. 승희 역시 가해자이자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도 우리와 같은 영혼이 있습니다. 어머니와도 상의했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편지를 써 올려놨습니다. 오늘 와보니 편지와 꽃이 많이 놓여 기쁩니다.”   스탠리의 편지 내용 중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승희냐, 난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이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네게 손 한번 내 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줘...”스탠리는 조승희의 사진을 보고 어느 날 문득 교정에서 몇 번 마주쳤던 그 말없던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승희에게 다가가 어깨를 치며 “야, 밥 먹으러 가자”고 못한 것이 이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말없는 외톨이를 만나면 입을 열 때까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들겠다고 다짐까지 했습니다.   조승희의 총에 죽어간 사람들과 범인을 똑같이 추모한다는 것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탠리는 그와 같은 반론에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수렁에 빠져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며칠, 몇 달, 몇 년을 갇혀 지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승희가 그런 상황이었을 거에요. 그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그에게 도움의 손을 뻗치지 않은 걸 뉘우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계속해서 스탠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습니다. “용서는 살아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지금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승희의 가족입니다. 그들을 만나면 꼭 안아주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필자는 스탠리가 크리스천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폈습니다. 아니 분명 그래야 하는 타당성 때문입니다. But I say to you, Have love for those who are against you, and make prayer for those who are cruel to you;“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만약 스탠리가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그 행위는 기독교의 방언, 기적, 기사, 신비적인 것보다 더 많은 감동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정판인 변한기 목사님의 저서 <갈등하게 하는 신앙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기도하는 것처럼 살고 사는 것처럼 기도하라.”조승희 추모석을 비껴간 바람에 실린 티끌로 눈물 흘리는 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Before God .*Virginia Tech shooting, school shooting at the Blacksburg, Virginia, campus of Virginia Tech on April 16, 2007, that left 32 people dead, including the shooter, SeungHee Cho. It was one of the deadliest mass shootings in the United States._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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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September 17, 2021 시마을 The Poem Village
    [시마을 The Poem Village | Photo _ Hilltop Park, Long Beach] The thoughts persist, until the poem ripens in my head, like a farmland bearing fruit. Eventually without the sight of it, begin to know the poem. As a poem remembers itself through poetry. A poem is forever the heart of a mother. These were the last words of the elder from the poem village. 혜화동 ‘보헤미안’ 찻집 문을 비스듬히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황금찬 선생님은 빵모자를 머리에 이고 시야를 뒤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10분 늦게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동안 황금찬 선생님은 이곳 커피가 맛있다며 어색한 내 몸짓을 커피향으로 달래주었다. 주눅이 들어 가져온 커피를 숭늉 마시듯 홀짝거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공간에는 늘 불편한 구름 한 점 끼기 마련이다. 금방 시 얘기로 말꼬리가 이어지자 다행히 구름마저 빈 찾잔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쯤에도 황금찬 선생님 눈빛은 단절되지 않았다.  “형편없는 시가 많어. 쓰레기 같은 시 말이야.” 그 쪽 길로 가다가는 필경 돌아 나오는 골목에서 헤매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 움큼씩 빠지고 있었다. 그럴 때는 빨리 길과 길을 잇는 징검다리를 찾아야 한다.      ***“시 작업은 어떻게 하세요?”<시마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계속 생각하지. 머리 안에서 시가 익을 때까지. 농사짓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익은 시는 보지 않아도 알아. 시를 통해 시가 스스로 외워지는 거야.”‘시마을’이 너무 아름다운데요.”“일 년에 네 번 나오는데 그것도 힘들어. 사람들은 읽는 것을 싫어해.” ***<시마을>은 1년에 만 오천 원이면 그 마을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한번 살아본 사람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황금찬 선생님(1918-2017)이 지구를 떠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마을>을 만 오천 원에 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요즘 <시마을> 입구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시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네 어구에서 할아버지 문지기에게 몇 마디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존재했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배려도 있었다. 그 비밀을 살며시 여기에 적을 것이다.      “저기 사과나무에 열린 보석이 먹고 싶다.”고 하거라. 그러면 할아버지는 “얘끼, 이놈 저것이 사과지 보석이냐.”  그 소리에 놀라 도망간 사람들이 다시 <시마을>을 찾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두려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바다가 마르는 심정으로 조금은 어설픈 변명을 하거라. 사과나무 보석이 아니면 내가 보석이 될 거라고.   그때서 할아버지는, “시는 영원히 어머니의 마음 그밖에 놓여지지 않는다.” ***사과나무에 걸린 어머니 마음이 시가 되는 이른 오후, 찻집을 나와 혜화동 전철역으로 함께 걷는 동안 길 가던 몇몇 사람들 황금찬 선생님과 눈을 기어이 맞추고 사라졌다. 길옆에서 오뎅 파는 아주머니와는 문장을 만들어 인사를 주고받았다.   “교회 목사님 사모님인데 얼마나 고생하는 줄 몰라.”   전철역에서 뒷모습 그림자만 남기고 황금찬 선생님은 ‘행복을 파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끝에서 촘촘히 사라졌다. 순간 살아지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이 무너진 것이 그 때쯤이다.  ***     “모든 것이 사람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 이제부터는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뜻대로 됐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그 뜻’이 항시 문제로 남는다. ‘그 뜻’이 ‘내 뜻’으로 해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뜻’대로 삶의 목적이 분명해진 이유다.   But let not my pleasure, but yours be done.“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 그리스도 조차 ‘내 뜻’이 아닌 ‘그 뜻’에 적중하는 구속을 완성했다. 사도 바울은 아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고 삶을 그 뜻에 몽땅 걸었다.  As long as we have life we are living to the Lord; or if we give up our life it is to the Lord; so if we are living, or if our life comes to an end, we are the Lord's.‘그 뜻’이 사과나무에 열린 보석일지 모른다.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될지 모른다.  ‘그 뜻’에 적중되는 시가 보석이 되는 그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두 뼘 커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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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25, 2021 잠든 종화 A Sleeping JongHwa
    [잠든 종화 A Sleeping JongHwa _ Photo ^ Palace of Fine Arts, San Francisco] 「아마도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웃으로 부터 처음으로 받아보는 인정인 것 같아 더욱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인 것을 믿어, 두 밤을 꼬박 새운 고마운 마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신을 드립니다. 내가 이곳 교도소에 수감되고 몇몇 선교지, 문학지, 기독 신문 등에 여러 차례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과 주님 안에서 형제의 사랑을 나누라는 선의의 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도 글을 보내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끔 글이 있었다면, 이 선교지는 이 신문은 이 책은 여러분들의 선교헌금으로 운영된다는 안내서 뿐 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그나마 소식이 끊겼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머뭇거리는 기억이 있습니다. 1997년 어느 날 미국 감옥에서 60은 훨씬 넘은 한 분이 보내온 서신입니다. <에피포도> 쪽지글이 세계, 사방으로 우편 우송되고 있을 때입니다.  편지글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41불을 보내드립니다. 지금은 감옥소 안에서 시간 당 41전을 받습니다.」   100시간 노동의 댓가로 얻은 돈입니다. 겨울철도 아닌데 순간 얼음처럼 굳었습니다.  여러 작품이 보내온 서류봉투에 가득했습니다. 그 가운데 <잠든 종화>라는 시 한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간혹 <에피포도> 쪽지글에 두 살 된 종화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그것이 시로 돌아왔습니다.   새록새록 잠든 종화누구랑 장난치나손짓 발짓 하면서잘도 노누나꿈에서도 엄마랑입을 맞추나오물오물 놀리는 입귀엽기도 하구나예쁜 볼 한입물면잠 깨일까봐살며시 볼만대고비벼봅니다                              - 잠든 종화, 전문동화 같은 맑은 시를 읽으며 왠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독을 발견하여 이내 가슴이 저렸습니다. 글의 중간 중간에서 새로운 표기법으로 바뀌기 전 한글식 표현이 자꾸 눈에 띄어 오랜 세월 그곳에서 잠식된 시간의 여정을 살폈습니다.  한국 라면이 먹고 싶다고 기도하였더니 어느 날 삼양 컵라면을 매점에서 판매하였다 하면서 이런 일 조차 사람들은 우연이라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라 고백한 것처럼 사소한 일에 익는 감사의 언어가 필경 있습니다. 2002년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그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묵고 있던 호텔로 가서 상상했던 얼굴을 익혔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문단에 등단을 하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종화 역시 훌쩍 자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시집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세월은 이렇게 엮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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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24, 2021 겸손 humility
    겸손 humility | 사진 _ 신영 PhotographerAll devotion and servitude begins with humility. We can only comprehend biblical humility once we descend to the depths of death. Christ Jesus died on the cross in Golgotha, then rose again. Still, the world continues to be twisted. Especially today, the wind seems too have lost its way, swaying everywhere. But that wind has entered a side of my heart, staggering within me.겨울을 위해 가을은 낮아지고 또 낮아져 그 자리를 내줍니다. 한 잎 낙엽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겨울은 오지 않습니다. 겨울은 바람을 녹여 녹색 숨을 몰아쉬고 봄을 잉태합니다. 수레바퀴에 걸린 계절이 돌아가는 것을 성경의 언어로 굳이 말하자면 겸손입니다. 겸손(humble)은 라틴어 후무스(humus)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후무스’는 땅 또는 흙을 뜻합니다. 어원적으로도 겸손은 높은 곳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겸손은 땅 아래로 내려와 죽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그 겸손을 눈으로 확인 시킨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방인이었던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안드레와 빌립은 마음을 다해 섬겨 예수님에게 인도했습니다(요12:22). 그들을 만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Truly I say to you, If a seed of grain does not go into the earth and come to an end, it is still a seed and no more; but through its death it gives much fruit.“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성경의 흐름을 보면 그 말씀 후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밀알에 관한 비유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경험한 신앙인의 헌신과 섬김을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 가를 결정짓는 지침과 같습니다. 신앙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삶에 대한 규칙입니다.  예수님은 그 후 최후의 성만찬을 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이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I have given you an example, so that you may do what I have done to you.“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모든 헌신과 섬김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그 겸손은 낮아져 죽음에 이르는 자리까지 마음먹지 않으면 성경적 겸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낮아져 사회, 세상, 교회, 환경, 믿음이 회복되거나 변화 시킬 수 있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은 꼬일 대로 꼬여있습니다. 오늘 따라 바람이 갈길 못 찾고 사방 흔들고 있습니다.   그 바람 한 점 가슴으로 들어와 휘청거리는 자신에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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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23, 2021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에피포도엽서 epipodo postcard 741-082121 _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The Lord added daily] 사진 _ 신영 Photographer목회를 하면서 한 가지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있습니다. “교회 성도와 적을 만들지 않는다”입니다. 사업하는 분들에게 조언하는 내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어떤 이유로 함께 할 수 없어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제가 목회했던 현장에서 그런 경우 마음의 적을 만들고 헤어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세월이 흘러 연락이 끊기거나 뜸 한 것은 있어도 언제 어디서 만나든 그리운 사람들입니다. 한 공간 안에서 동역자의 관계는 될 수 없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입니다. 한 형제, 자매가 다투고 싸우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임미경 집사님은 엘에이서 사모하는교회 까지 와서 반주로 헌신했습니다. 40분이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운전면허증은 있는데 손수 운전하고 올 수가 없어서 장로님이 픽업하고, 예배 후에 엘에이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러다 임미경 집사님은 거리상,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교회 반주를 이어가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표 제출, 그냥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그 후 임미경 집사님은 멕시코 선교여행에 함께 동행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모하는교회에서 피아니스트로 사역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또 다른 반주자를 하나님은 보내주셨습니다. 살로미 오 자매님도 약 두 달 반주를 하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반주를 못할 것 같다고 그 주간에 이야기를 들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살로미 자매님은 예배 후 스캐즐 때문에 늘 바삐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살로미 자매님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뒤 시간을 하나님이 정리해 주거나 반주로 헌신하는 일정에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카톡으로 사표 제출 소식을 듣고 임미경 집사님을 보낸 것처럼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거의 3년여 동안 반주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구입한 성능 좋은 반주기를 틀어 놓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섬김(예배 반주)을 통해 드리는 예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최재호 전도사님은 임미경 집사님이 사모하는교회 반주자로 헌신을 결정 하고 한 달 지난쯤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 카톡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쌓이면서 세월이 흘렀습니다. 살로미 자매님이 갑작스럽게 반주를 할 수 없게 되어 전도사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주간에 오셔서 피아노 반주로 헌신했습니다.   그 때 처음 필자 역시 전도사님을 교회에서 뵙는 날이었습니다. 식사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도사님은 예배가 끝나고 총총 사라졌습니다.  모든 시간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고 우리가 계산하는 시간의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의 때가 하나님의 시간과 겹쳐지면 그보다 좋을 수 없지만 거의 다급한 우리 시간에 매달려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지났습니다. 전도사님에게 화요일 아침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화통화가 잠시 길어졌습니다. 전도사님의 속마음을 눈치 챘습니다. 카톡으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목사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동역자로 불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중략) 주님께서 행하실 일을 사모합니다. 사모하는교회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온 모든 시간들은 이제 접어 두고 이곳에 처음 온 심정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려 합니다. 부디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사역의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모하는교회에 반주자를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교역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비록 헤어졌지만 임미경 집사님, 살로니 자매님과의 관계도 아름다울 이유입니다.   주께서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이번 주 주일예배 설교제목입니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전도사님은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찬양인도까지 합니다. 예배 시작 전 찬양을 전도사님이 피아노를 치면서 인도할 것입니다.   최재호 전도사님아내, 최장엽 첫째, 딸 12학년 최사랑(영어이름 Kailey)둘째, 딸 8학년 최하람(영어이름 Faith)   온 가족이 온전히 사모하는교회의 지체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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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07, 2021 선택적 지각과 인지부조화 | Selective perception and Cognitive dissonanc…
    대체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적 합리성을 믿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 추론하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은 어떤 정보를 인간이 수용할 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인식체계와 일치 혹은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이론입니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진술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에서 성령에 의해 출생하였다는 성경의 진술은 과학의 분석적 연구에 의해서도 밝혀낼 수 없는 사건입니다. 만약 이러한 진술을 인간의 기존인식체계로 받아들인다는 전제로 귀결한다해도 그것은 ‘허구’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객관적인 도구가 성경이어야만 하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즉 인간의 이성, 합리성의 기초인 인식체계와 불일치하는 것들이 과학적 진술 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것도 있습니다. 태도와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면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둘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것을 신앙의 자기 합리화라고 지칭합니다. 신앙적인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성경(태도)과 행위에서 불일치가 파생하면 성경에 행위를 맞추기 보다는 행위에 맞게 성경을 해석 또는 적용시키려고 시도합니다. 당연히 하나님 말씀이 훼손되거나 변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선택적 지각과 인지 부조화의 대표적인 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해서 요셉과 마리아가 내린 결론입니다. He decided to break the engagement quietly (New Living Translation). “가만히 끓고자 하여(마1:19).” 그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May it be to me as you say (Bible in Basic English).“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결국 믿음이란 하나님의 개입과 은총으로 선택적 지각과 인지 부조화가 파괴되는 그 지점에서 고백하는 진술과 행위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는 마리아와 요셉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주저앉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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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07, 2021 며칠같이 | Only a very little time
    Christians display the grace that makes hard and difficult times seem only momentary. Difficult times will pass. They always do. 리차드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의 저서 중 <Torture>가 있습니다. 아마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Torture>는 일반적으로 ‘고문’으로 직역 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수동태 구문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당할 수밖에 없는 현상, 현실에 무게 중심이 있는 단어입니다. “억지로 나무 따위를 비틀 거나 구부리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고통의 최극단을 일컫습니다. 웜브란트는 1950년 당시 소련(현재는 러시아)의 공산치하에 있던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14년간 감옥 생활을 견뎠습니다. 그 당시 옥중의 상황을 정리해 놓은 것이 <Torture>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고문, 지독한 고통, 마취제를 맞아가며 14년을 그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성경과 일반 책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기억에 잔재했던 먼지까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웜브란트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성경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And Jacob did seven years' work for Rachel; and because of his love for her it seemed to him only a very little time.“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29:20).”“칠년을 며칠 같이.”웜브란트의 목소리로 들어보면 그 힘든 고통의 14년이 며칠 같이 훅 지나갔다는 고백입니다. 야곱 역시 7년의 세월이 수일 같이 지나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지치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수일처럼 지나가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죽을 만큼 힘들고 사방이 막혀있을 때 나타나는 아주 특별한 은혜입니다. “며칠 같이.”곧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Difficult times will pass. They always do.“수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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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07, 2021 올해도 끝이 보입니다. 마지막 강의를 준비할 때입니다.
    We see the end of this year. Our time for our last lecture will come as well.“어떤 성취든 이루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지만 벽이 있는 이유가 있다. 그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는 지를 시험하는 기회이다.” 랜디 포시(Randolph Frederick "Randy" Pausch. 미 카네기 멜런대학. 컴퓨터공학 교수. 1960-2008)의 마지막 강의는 눈물로 바다를 이루는 삶의 경의였습니다. 의사로 부터 췌장암 선고를 받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제한되었다는 시한부 판정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강의 동영상은 이미 500만 명 넘게 시청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 주세요. 자신보다 주변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 밑바닥에 있습니다.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옵니다.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세요.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들어 주는 것입니다.” 10개의 종양 사진을 보여 주며 강의 하는 그의 얼굴에는 가장 행복한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사실 랜디 포시 교수의 이번 마지막 강의는 그의 세 자녀, 딜런(5세), 로건(2세), 클로에(1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눈 한번 껌벅였는데 벌써 세월은 새로운 숫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 한해는 코비드-19로 인해 모레바람 휘날리는 사막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을 것 같은 세월도 올 해의 끝이 보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강의를 준비할 때입니다.    “포기한 일이 있었는지, ‘감사합니다’와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얼마나 주변을 둘러보았는지, 믿음으로 사람에 대해 손해를 본 적이 있는지, 더 내려갈 수 없는 나락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였는지, 하나님이 허락한 기회를 얼마나 사용하였는지,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늘 왕처럼 대했는지, 종종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합리화 시켰던 일은 없었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얼마나 듣고 여기 까지 왔는지.”아직도 정답을 찾아 분주한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한 해의 끝이 한 뼘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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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ugust 07, 2021 모든 문제의 해결 | The solution to all problems
    다음 단어를 상상해 보십시오. 고난 suffer, 마귀 devil, 환난 persecution, 시험 test. 이와같은 단어의 굴레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유의 단어와 반대되는 영역을 인간은 소망합니다. 그런데 위에 열거된 단어가 모두 조립된 상자 안에 갇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 그 이상의 아픔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서머나교회 the Church in Smyrna 입니다(계2:8-11). 성경을 읽는 독자라면 그 이후 “하나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고난, 마귀, 환난, 시험이라는 단어를 속히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정리할 것을 기대합니다. 문제는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을 하나님은 사용하고 있습니다.“죽도록 충성하라 Be true till death.” 고난, 마귀, 시험, 환난에도 견디기 어려운 한계상황인데 충성, 그것도 “죽도록”입니다. 죽으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 내 생각을 벗어난 엇박자 문장입니다.   많은 신앙인은 어려움이 오면 그동안 잘 해오던 헌신을 포기합니다. 아예 신앙을 포기하거나 교회를 떠나기도 하며 하나님과 완전히 등 돌리기도 합니다. 코비드-19로 그 굴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극심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신앙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려움이 오면 올 수 록 해오던 헌신에 더욱 충성하라고 격려합니다. 극한환경을 이겨내는 여러 방법 중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를 갖고 계십니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가혹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 문제의 해결은 그동안 해오던 헌신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모든 문제의 해결이 거기에도 있습니다.Be faith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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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pril 03, 2021 생일카드 | Her son wrote his mother a heartfelt card on her 50t…
    The boy who once loved power rangers grew up to now be a 24 year old young adult. 시도 때도 없이 종권이는 팬티를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도 앞쪽이 아니라 뒤쪽 엉덩이 입니다. 적당한 기회가 있으면 옷을 벗으려 합니다. 오늘도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교회 집사님 앞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국인 할머니에게,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바지를 내립니다. 파워레인저(Power rangers)를 좋아하는 종권이는 요즘 어딜 가나 그 인형을 갖고 다닙니다. 붙였다 떼었다 조립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완성이 되면 언제나 아빠에게 자랑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파워레인저가 속 옷 팬티에 그려져 있으니, 종권이가 틈만 나면 바지를 내리는 이유입니다.     내가 그처럼 부끄러운 것은 종권이가 바지를 내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바지를 내리면서까지 거침없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종권이 마음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자랑하려는 것이 바지를 내리는 일도 아닌데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여전히 종권이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할 용기도 없습니다.파워레인저를 좋아하던 아들은 훌쩍 자라 24살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어머니 50회 생일카드에 마음을 담았습니다.어머니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바지를 내리며 파워레인저를 자랑하지 않지만 어머니를 통해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1 John 4:19).”Happy Birthday Mom!Happy birthday to the strongest and most amazing individual I have ever known. I am beyond blessed to call you my mother.I am unable to express in words how blessed I am by God to have been given an amazing figure to call you my mother. You’ve shown me what it means to be tenacious, motivated, full of grit, and steadfast in our lives. But above everything else, through your love and affection, I was able to experience the closeness of Gods unconditional love. If anybody embodies the fruits of the spirits so gracefully, it is you. You boast so much perfection in an imperfect world. Everything I do is for you, and will be for you.Thank you for all that you’ve done to raise this prodigal son.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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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하는교회April 03, 2021 기대해 봅니다 | Anticipate
    필리핀 두마게띠에 필자의 친구 이정수 장로님이 살고 있습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남은 삶을 몽땅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가축 시장에 소를 사러 갔습니다. 교회에서 소 뱅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먼저 일곱 집사님들에게 소를 사 주었고 새 교인이 일정한 기간 출석하면 소 뱅크 멤버들이 회의를 하여 추천하면 소를 사 줍니다. 일 년 후에 원금만 회수하고 나머지 수익은 소를 기른 교인이 가져가는 시스템입니다. 오늘은 세 마리를 구입했습니다. 지금까지 다 잘 하시는데 한 집사님이 소를 사지도 않고 돈을 써 버렸습니다. 기대해봅니다. 가축 시장에  소 사러 가는 일이 많아지길...”소시장 사진과 함께 친구 장로님이 보내온 소식에 가슴이 왜 이리 뛰는지. 소를 사라고 돈 받은 사람이 엉뚱한 곳에 돈을 다 써버렸어도 포기하거나, 실망하거나, 그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기대해봅니다.” 그 짧은 문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마음을 훔쳐 읽습니다. 그 다음 문장은 마음 저린 이유입니다.  “가축 시장에 소 사러 가는 일이 많아지길...”사역을 감당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거나,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도, 상대방을 통해 실망하는 일이 일어나도 그 사역에 대한 꾸준함과 변함없이 지속시키려는 간절함이 묻어있습니다. 하나님도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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