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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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2)
[사명]
Even so let your light be shining before men, so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ive glory to your Father in heaven.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같이 너희 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제의입니다.
>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 let your light be shining before men
그 빛은 사람의 뒤를 비취는 것이 아닙니다. 앞을 비취는 빛입니다. 그 일로 세상으로부터 칭찬, 인정받지 못하거나 가만히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빛을 파괴해서 어둠을 지속시키려는 시도를 할지 모릅니다. 사람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위가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성애를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거부하는 행위는 지극히 성경적인 선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기독교는 인간을 존중하지 않거나 인간애를 말살 시키는 종교로 비난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의로운 일에 대해서는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 착한 행실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착한’은 헬라어 성경에 ‘선한’과 같은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I am the good keeper of sheep: the good keeper gives his life for the sheep.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행했던 최고의 선한 행위는 무엇입니까? 고난과 죽음으로 구속을 완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로서 착한 행실은 무엇입니까? 구속의 증인과 하나님 자녀로서 본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남을 돕는 선한 행위로만 정의한다면 불신자 가운데 신앙인 보다 더 많은 자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비교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삶은 성도가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선한 행위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칭찬, 인정,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세상이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영광이 아니라고 까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최고가 되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신앙인에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더 깨끗한 심성과 봉사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보통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신뢰하는 기준은 40% 이상 일반적 기준을 넘어야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게 감동을 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불신자의 사회적 기준을 80%라고 가정할 때 그 불신자는 신앙인에게 40% 이상을 더 요구합니다. 그것이 만족되지 않으면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120%의 일반적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100%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았을 때 120%의 요구는 신의 수준을 세상이 신앙인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욕을 먹습니다. 물론 소수의 신앙인들이 잘못해서 사회에 무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한 사람, 신앙인의 잘못을 기독교 전체의 부조리로 몰아갑니다. 세상과 성도가 다툼이 일어나면 심중팔구 교회가 불리합니다. 그들은 정당한 요구에도 하나님과 교회를 끌고 들어와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앙인의 실수는 잡티 수준입니다. 그 티를 세상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습니다. 불신자의 시각으로 그 티는 기독교 전체로 확장해서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적, 도덕적인 삶을 무시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본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상 살아가는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어 그 보다 더 도덕적인 성품과 베푸는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세상을 감동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빛이라’은 다시 언급하지만 세상기준에 성공하라는 메시지가 결코 아닙니다. 빛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마태복음 5장 17절부터 48절까지 세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5장 48절은 빛으로 살아가야 될 방법론에 대해 최종 결론입니다.
Be then complete in righteousness,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complete.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온전해 지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여기서 ‘온전’은 끝, 목표로 번역되는 어원에 뿌리 두고 있습니다. ‘온전’은 끝, 목표에 도달하는 행위입니다. 명령형이지만 헬라어 원문 성경은 수동태 구문입니다. 하나님이 각 신앙인에게 온전케 하는 일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철저히 지키십시오.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형제와 다툼이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십시오. 오른 눈이 실족하거든 빼어 버릴 정도로 죄에 물들지 않도록 죄에서 멀어지십시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맞으십시오. 속옷을 달라하며 겉옷까지 선물하십시오.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아니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와 같은 전개가 신앙인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될 본질적인 자세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 빛은 사람들 앞을 비취는 빛입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착한 행실은 구속의 증인으로 하나님 자녀의 본질을 유지하는 행위입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끝까지 도달하는 목적에 근거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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