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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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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5-03-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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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1)

 

 

 

인간은 살아가는 유형이 다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삶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살고 누구는 저렇게 사는 개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걷는 신앙인을 향해 예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원적인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신앙인의 정체성에 관한 진술입니다.

 

 

[청중]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5:14).

 

가슴 뛰는 말씀입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너희는 you입니다.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그 단서가 마태복음 5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seeing great masses of people he went up into the mountain; and when he was seated his disciples came to him.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1).

 

너희는 무리와 제자들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의 대상은 그 장소 그 시간에 모였던 청중과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청중의 성향에 대해 다음 성경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And news of him went out through all Syria; and they took to him all who were ill with different diseases and pains, those having evil spirits and those who were off their heads, and those who had no power of moving. And he made them well.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온갖 질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5:24).

 

And there went after him great numbers from Galilee and Decapolis and Jerusalem and Judaea and from the other side of Jordan.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쫓으니라( 5:25).

 

그 무리들의 특징은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육신의 고통, 정신적 혼돈, 병자, 그 당시 의술로 고칠 수 없었던 병명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

 

마태복음 5장 직전까지 네 명의 제자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4:28), 야고보와 요한(4:21)입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직접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혹은 부르시니, 직업을 포기하고 그 즉시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입니다. 예수님에게 신적 권위가 없었다면 쫓는 행위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의 중심인물은 제자들입니다.

 

 

[단정]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 음성을 주위에 있던 무리들도 듣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표현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오늘 비로소 정규 필수 과목인 가르침의 수업을 받기 직전입니다. 그러나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너희는 졸업한 상태라고 졸업장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상태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니면 구름위에 올라간 기분이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제자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중 역시 그 말씀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가장 약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입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을 때 가능성이 없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단서가 필요할 이유입니다

 

 

[규명]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할 때 그 문장은 갑자기 등장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하기 전에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에 관한 진술을 했습니다. 그 팔복은 세상의 빛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가 한 마디로 세상의 빛입니다. 왜야하면 삶이 축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덟 가지 복 가운데 마지막 복은 심상치 않습니다.   

 

Happy are those who are attacked on account of righteousness: for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theirs.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5:10).

 

여기서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에는 핍박이 존재할 것을 예시합니다.

 

Happy are you when men give you a bad name, and are cruel to you, and say all evil things against you falsely, because of me.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1).

 

하나님의 의를 위하는 것을 (예수님)를 인하여로 부과 설명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박해, 모함, 악한 말을 듣는 그 자체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Be glad and full of joy;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so were the prophets attacked who were before you.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12).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고 즐거워할 목적입니다. 삶을 통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영역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내는 삶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누릴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본질적인 규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세상의 빛입니다.   



[시작부터 완성된 작품]

 

그래도 인간이 아는 상식에 반합니다. 한 번 더 고민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라고 묘사했습니다( 9:5, 8:12, 12:46). 그런데 마태복음 5 14절은 너희가 세상의 빛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예수님과 동격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빛이 어둠에 들어오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그 상태가 생명의 빛입니다.

 

Then again Jesus said to them, I am the light of the world; he who comes with me will not be walking in the dark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어둠이 생명의 빛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성령이 내주하여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 빛은 생명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런 상태를 신의 성품으로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 설명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심층적입니다.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 who is then a cause of fear to me? the Lord is the strength of my life; who is a danger to me?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1).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으로 고백합니다. 그 여호와가 구원의 빛입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능력의 빛입니다. 결국 하나님 자녀의 출발지점은 빛입니다. 시작부터 빛입니다. 위대한 선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에 의해 시초된 존재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빛은 빛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보다 도덕적, 윤리적, 착한 일로 살아가라는 훈계도 아닙니다. 이미 되어 진 것입니다. 되어 진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되어 진 것은 하나님의 신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믿기도 전에 이미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 자녀 신분에 대한 존재론적인 규명입니다. 그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야. 성격이 급하거나 혹 죄로 넘어져도 괜찮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야. 다시 회복 될 거야. 돈이 없어도 괜찮아. 몸이 약해도 괜찮아. 여전히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야.

 

 

[드러남]

 

그 세상의 빛은 밖으로 드러나거나 온전히 공개됩니다. 세상에 숨을 곳이 단 한곳도 없습니다.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town put on a hill may be seen by all.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5:14).

 

빛이기 때문에 산 위에 동네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숨을 장소가 없습니다. 도망갈 장소도 없습니다.

 

And a burning light is not put under a vessel, but on its table; so that its rays may be shining on all who are in the house.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5:15).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그 빛에 의해 집이 공개되었습니다. 믿는 가정을 말할 때 홍길동 집은 예수 믿는 집이야. 공동체가 드러납니다. 들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빛을 주목하거나 주시합니다.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지, 제대로 믿고 있는지,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 있는지 감시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 사실은 꺼지지 않는 빛입니다. 그 빛이 하나님 자녀의 속성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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