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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8 _ 세 번째,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비유 C _ 접촉점 그리고 돌아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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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254회 작성일 22-08-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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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8 _ 세 번째,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비유 C 

접촉점 그리고 돌아간 후 



드디어 가출한 아들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 상담, 지시, 지도를 받아서 돌아 간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의적인 판단과 결단에 의해 돌아갔습니다.

 

그 아들은 가출해서 가지고 온 모든 돈을 낭비했습니다. 주머니에 단 1센트도 없었습니다. 마침 아들이 있는 지역에 흉년이 들어 그 나라의 경제도 좋지 않았습니다. 돼지 사료를 먹어가며 근근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생존할 여력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돼지사료를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순간의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 환경으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도에게 최악의 조건이 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최악의 환경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승부를 거십시오.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개념입니다. 회개는 명사개념이 아니라 동사형입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동사적 행위가 회개입니다.

 

지금부터 아버지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

[접촉점 _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난 일]

 

And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far away, his father saw him and was moved with pity for him and went quickly and took him in his arms and gave him a kiss.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15:20).”

 

 

 

**

a. SEE _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보고그 앞에 수식어를 눈여겨보십시오. “상거가 먼데,” 영어성경(BBE)“far away”NIV“a long way”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먼 거리보다 더 먼 거리입니다. 사물이 구분 안 되는 거리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본 것(see)은 현재시제가 아니라 과거 시제(헬라어 성경)입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아들이 가출한 후 그 장소, 그 시간에 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었다는 증거입니다. 우연이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과 앎입니다. 단언컨대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면 변화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시력은 어느 정도 일까요? 역사를 관통하는 시력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시력입니다.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시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볼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이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시편 139편을 정독하십시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You have knowledge when I am seated and when I get up, you see my thoughts from far away.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139:2).”

 

하나님이 나의 일어섬과 앉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곧 나의 모든 행위를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생각을 통촉한다는 것을 BBE 성경에 “You see my thoughts from far away”로 번역했습니다.

 

멀리서도상거가 먼데로 번역된 문장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현재 생각뿐만 아니라 먼 거리에 있는 생각까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까지 알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생각이 아니라 생각들복수입니다. 성도의 생각을 그림을 보듯 구체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You keep watch over my steps and my sleep, and have knowledge of all my ways.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139:3).”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과 잠자는 동안에도 주무시지 않고 보호합니다. 여기서 감찰하다“keep watch”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행위를 중단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야가 나에게 고정되었습니다.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있어야 회개가 완성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한다면 아무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결단코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성도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가 아니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율법에 대해 최고 지식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이 강했습니다. 구원의 길을 율법의 행위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견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앙은 착각이 아닙니다. 나의 행위로 구원의 길에 이른다고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

b. PITY _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 대해 측은히 여겼습니다. “측은히 여기다는 단순한 아들에 대한 동정, 연민이 아닙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필연적으로 도와야 되는 상황입니다. 역시 과거시제를 사용했습니다. 가출한 아들에 대해 아버지의 마음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이 여기지 않으면 인간은 죽은 존재입니다.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구속론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긍휼이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

c. TAKE _ 아버지가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아버지 품에 안긴 아들의 감정이 궁금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아버지 목소리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드디어 아들이 처음 입술을 열었습니다.

 

And his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done wrong, against heaven and in your eyes: I am no longer good enough to be named your son.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15:21).”

 

어디서 들어본 문장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다짐했던 내용입니다. 결단했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토로했습니다.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스스로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호적에서 이름을 팠을지 모릅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벌을 주든지, 쫓아내든지, 추궁하든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중은 아버지의 반응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에게 돌아가면 하나님은 나의 죄과를 묻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난 후에 받은 하나님 은혜의 감격을 되돌려 생각해 보십시오.

 

침묵하는 하나님,

 

 

 

***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지점에 일어나는 현상의 주인공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반응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야는 언제나 명확했습니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구원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 은혜의 감동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감격이 식지 않도록 애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죄의 고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 하나님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침묵은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

[돌아간 후 상황]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Get out the first robe quickly, and put it on him, and put a ring on his hand and shoes on his feet: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15:22).”

 

> 회복 _ 관계적 확증.

좋은 옷, 반지, 신발은 내 아들이라는 신분의 회복을 뜻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확증 시키는 도구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야. 집에 있을 때에도 내 아들이야. 집을 가출했을 때에도 내 아들이야.”

 

아들이 아닌 사람이 아들로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들이었기 때문에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이 너는 나의 자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 시켜주는 은혜입니다.

 

 

> 공증 _ 공개적 확증

And get the fat young ox and put it to death, and let us have a feast, and be glad.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15:23).”

 

공개적으로 이 아이는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잔치를 통해 확증시켰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표현과 대등합니다. 본질적으로 빛이 어둠이 될 수 없습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답게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대충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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