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할 그 때에 When I am w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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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할 그 때에 When I am weak
항시교회는 문제를 안고 있다.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열의 위기였다. 남녀문제, 소송, 결혼, 먹는 문제, 예배, 은사, 헌금, 복잡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다른 문제가 돌출되었다. 바울 자신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 문제를 좀 더 심중 깊게 들여다보면 바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도직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신이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권사냐?”
따지듯 도전해 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찔한 순간이다. 직분의 위기시대이다. 목사님을 목사님으로 봐 주어야하는데. 장로님을 장로님으로 보아야 하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사역자는 사역자다워야 한다”는 좋은 의미의 충고일 수 있다.
사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변호할 때가 가장 슬픈 일이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직분의 보호와 순결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들어 권위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교회의 권위, 목사의 권위, 장로의 권위, 어떤, 어떤 권위, 그러다 어느 사이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가 아니라 공포의 종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세시대는 끔찍할 정도였다.
사실 권위는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특별히 직분에 있어서 하나님에 의한 직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위 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교회와 사역자가 권위만 있고 능력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사도직에 대해 도전해 오는 사도 바울의 반응은 그래서 직분의 위기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바울은 사도직에 대한 도전 앞에 사도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이란 게 유치하기 그지없다. 죽을 뻔하고 매 맞고 배가 파선당하고 여러 위험과 춥고 헐벗고 목마르고 광주리를 타고 도망간 일을 말하고 있다(고후11:21-33). 한 걸음 더 나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하였다(고후11:23). 곧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능력이란 뜻이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의 세계를 시정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능력을 우리 이익에 맞추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조종했을지 모른다. 죽을병에서 치유되거나, 좋은 대학가고 잘 살고 잘 먹고 하는 것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생각했다.
사나 죽으나 성도는 하나님의 것인데 사는 것만 능력의 세계로 인식해 왔다. 그와 같은 영역으로 은혜, 자비, 풍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죽음까지 가는 환난, 궁핍, 고통은 아무 능력이 없는 것으로 그것도 아니면 고의적으로 거부하였다. 죽는 것은 능력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자존심의 문제였다. 교회의 자존심, 사역자의 자존심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능력 있는 교회, 사역자가 최고였다. 신기한 사건이 줄줄이 일어나는 것만이 능력이라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이 바울의 고백으로 무너지고 있다.
바울의 능력은 실패였다. 적어도 그에게 일어난 사역의 체험으로 그렇다. 아주 무너지는 진 싸움이었다. 그러나 더 내려 갈 곳이 없는 땅 끝에서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하고 있다.
Therefore I take pleasure in infirmities, in reproaches, in necessities, in persecutions, in distresses for Christ's sake: for when I am weak, then am I strong.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성도가 추구하는 소망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역자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근간이다. 곧 성경이 말하는 능력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일구어 내는 근거에 기초한다. 그래서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철저한 실패자의 모습이다. 그게 바로 약할 때이다. 그때가 곧 강함이다. 능력의 세계이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Our weakness gives opportunity for the power of the Lord Jesus Christ to be manifested. That blessed One never leaves and never forsakes us. The greater the weakness, the nearer He is to manifest His strength. Help in His own time and way is sure to come. This has been my experience for more than 70 years.
우리의 약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약하면 약할수록 그의 능력을 나타내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더욱 가까이 있다. 하나님의 도움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맞추어 분명히 찾아온다. 이것이 나의 70평생의 경험이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 약함이 가장 큰 능력이 되는 셈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힘 있는 줄로 생각한 것이 능력이라 꾸며왔다면 이보다 더 큰 착각은 없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약해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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