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Jesus Christ's Prayer > 성경강좌

본문 바로가기

성경강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Jesus Christ's Prayer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62회 작성일 22-02-19 21:51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Jesus Christ's Prayer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의 호흡에 예수님의 심정이 녹아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눈여겨 볼 기도의 자세, 다섯 가지를 학인하려고 합니다.

 

 

 

1. 습관 _ 습관적인 기도였습니다

 

And he came out, and went, as his way was.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쫓아(22:39).”

 

여기서 습관은 나쁜 버릇이 아닙니다. 몸에 벤 기도였습니다. 어쩌다 한 번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 기도하던대로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규칙적인 기도였습니다.

 

습관적인 기도는 40일 금식기도처럼 특별한 기도가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은 평상시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평상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돌파하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2. 장소 _ 지정된 장소에서 기도했습니다

 

And he came out, and went, as his way was, to the Mountain of Olives, and the disciples went with him.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쫓았더니(22:39).”

 

예수님이 습관을 쫓아 기도하던 장소가 감람산(올리브 산,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죽음 직전 다급해서 기도할 공간을 찾아 올라갔던 산이 아닙니다. 그 감람산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장소입니다.

 

And every day he was teaching in the Temple and every night he went out to the mountain which is named the Mountain of Olives to take his rest.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21:37).”

 

가룟 유다가 군병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예수님을 쉽게 체포했던 이유도 제자들에게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화장실, 운전하다가, 길을 걷는 도중에, 비행기 안에서, 목욕탕에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기도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도하는 자세가 틀려집니다.

 

And he went forward a little, and falling down on his face in prayer,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26:39).”

 

예수님이 드렸던 그 기도의 자세로 백화점, 장터, 식당 등에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배당에도 성도의 자리가 있습니다. 누가 그 자리를 지정해 준 것도 아닙니다. 지정된 내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에는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기도하는 내 자리가 있습니까?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그 자리가 소명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역과 헌신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지정된 내 자리가 없다면 이참에 기도의 골방을 꼭 만 드십시오.

 


3. 방패 _ 방패기도였습니다 

 

방패기도는 시험 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미리 하는 기도, 예방하는 기도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그 문제를 수습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도입니다. 혹은 일어날 상황을 직시하고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신적권능으로 십자가에서 죽음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방패기도는 앞으로 일어날 구속사역의 고난과 죽음을 직시하고 그 문제를 오로지 성취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고난과 죽음의 길로 가는 여정을 넉넉히 이겨나가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Father, if it is your pleasure, take this cup from me: but still, let your pleasure, not mine, be done.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22:42).”

 

사실 예수님은 신이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약한 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방패기도를 한 이유는 초자연적인 신적권위를 가지고 십자가상에서 힘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된 신적 권위를 가짐과 동시에 인간이었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인간예수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구속을 완성하기 위한 죽음의 길은 예수님이 필할 수 없는 필연적인 길이었습니다.

 

 

 

***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동시에 제자들이 당할 혼돈과 시험 때문이었습니다.

 

Keep watch with prayer, so that you may not be put to the test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26:41).”

 

예수님은 기도하는 도중에 내려와 잠자고 있던 제자들을 깨웠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제자들을 깨웠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날 밤 그 누구도 앞으로 다가올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한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의 동향을 성경은 놓치지 않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제자들은 사방 제 갈 길로 돌아갔습니다. 방패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방패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도입니다.

 

 

 

4. 목적 _ 목적 있는 기도였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 뜻에 적중하는 기도였습니다.

 

Father, if it is your pleasure, take this cup from me: but still, let your pleasure, not mine, be done.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22:42).”

 

십자가의 죽음을 피해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이르는 공적기도였습니다.

 

And being in great trouble of soul, the force of his prayer became stronger, and great drops, like blood, came from him, falling to the earth.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22:44).”

 

간절한 기도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와 같이 예수님 심정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자녀, 가정, 생업, 건강 등을 이유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구속의 완성을 위해 드리는 목적 있는 기도였습니다.

 

교회를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흩어져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을 들을 위해,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교회 성도를 위해, 예수님처럼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뜻에 적중되는 목적 있는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돕습니다.

 

And an angel from heaven came to him, to give him strength.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22:43).

 

사자가 기도하는 예수님의 힘을 돕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도입니다. 성령의 기도합니다. 성도라면 기도할 때 대다수 경험되는 일들입니다. 성령이 기도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기도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폭이 넓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우리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가정을 위한 기도에서 교회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이웃을 위한 기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나라를 위한 기도에서 세계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5. 순간 _ 기도에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세 번씩 제자들에게 와서 깨어 기도하라고 간청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잠들어있던 제자를 깨우는 예수님의 심정은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타이밍 때문입니다.

 

Then says he to them, My soul is very sad, even to death: keep watch with me here.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26:38).”

 

예수님의 기도제목입니다. 예수님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제자들이 그 제목으로 기도해야 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요청에 단 한 사람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제자들은 다시는 그 기도제목으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

Then he comes to the disciples; and says to them, Go on sleeping now, and take your rest: for the hour is come, and the son of man is given into the hands of evil men.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26:45).”

 

왜 이렇게 이 문장이 가슴 아플까요? 더 이상 그 기도 제목으로 깨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문제(구속의 완성)를 위해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한 영광스런 타이밍을 제자들은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타이밍을 놓쳤던 제자들의 행방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알지 못하겠노라(26:70).”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알지 못하노라(26:72).”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26:75).”

 

예수님을 부인하는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습니다. ‘저주라는 단어까지 사용했습니다. 알면서도 모른다는 거짓을 철저히 숨겼습니다. 우리말에 생까다가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속되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고의로 무시하거나 모르는 체 하다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의식적으로 예수님을 생깠습니다.

 

 

 

***

사방 흩어졌던 제자들은 스스로 회복하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찾아주지 않았다면 회복 불가능이었습니다.

 

습관 _ 습관적인 기도가 몸에 익숙해지도록 하십시오.

 

장소 _ 기도하는 지정된 장소를 만드십시오.

 

방패 _ 시험에 들지 않게 미리 기도하십시오.

 

목적 _ 하나님 뜻에 적중하는 목적 있는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순간 _ 기도에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