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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끼라 1 _ 시간의 보편적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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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844회 작성일 22-01-19 21:52

본문

Making good use of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6).”

 

세월을 아끼라.” 간단하지만 완성된 문장입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조립되었을까? 궁금합니다. 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그 문장에서 끌어올린 중요한 세 가지 개념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질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 질문은 완성된 말씀이 반드시 정답이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세월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그 세월의 정의를 알아야 세월을 아끼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최소 개념은 시간입니다. 시간과 세월은 같은 의미입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그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크로노스(kronos)는 일반적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진 객관적 시간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카이로스(kairos)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말합니다. 질적인 시간으로 기회로 번역됩니다. 곧 그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기회입니다.

 

두 번째,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경적 표현으로 하면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주옵소서(90:12)”입니다. 철학적 시각에서는 삶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입니다. 결국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삶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영역에서는 존재론적인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다룹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그 문제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세 번째, “아끼라는 개념은 무엇입니까? 어원적 의미는 사다. 취하다. 내 것으로 만들다입니다. 대가를 주고 사서 완전히 내 것으로 회복하는 행위입니다. 곧 아낀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영역입니다. “아끼라는 속량(구속)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3:13. 4:5).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3:13).”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이 나를 산 것이 속량입니다. 하나님 것으로 만든 것이 구속입니다.

 

 

 

>***+

이제부터 세 가지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시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일반적 시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 누구에게나 주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한 사람, 남성, 여성, 어른, 아이, 병약한 사람, 건강한 사람... 모든 사람이 소유한 공통적인 시간입니다. 하루 24시간을 공히 사용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값없이 생각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느끼지 못하거나 흥미가 없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세상에서 나만 가지고 있다면 특별한 가치가 있겠지만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환경 때문입니다.

 

> 신비한 가치가 있습니다.

시간의 크기, 모양, 색깔, 무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아니 거의 모든 세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양과 색깔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변하지도 않습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같은 그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육신이 늙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그 시간은 변함이 없습니다. 만약 시간이 변화한다면 하나님 나라에도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론상 맞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어렴풋한 종말에 가서 / 저 태양이 나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할 때가 오리라 / 목동은 보리수 그늘에서 피리를 불고 / 가축들은 강 기슭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 내 운명은 어둠속으로 지날 것이다.” _ 19 세기 낭만파 시인 타골의 시

 

시인은 죽어가는 데 그 주변 환경은 너무나 목가적이고 서정적 풍경입니다. 시인의 죽음과 환경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죽어가는 사람과 세상의 풍경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목동은 보리수 그늘에서 피리를 불고 가축들은 강 기슭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습니다. 죽음은 그 넓은 우주에서 오로지 홀로 떨어진 자신의 문제입니다. 나는 죽어 가는데 세상은 나의 죽음과 관계없이 잘도 돌아갑니다. 이를테면 세계 79억 인구가 소유한 시간이 100이라면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시간이 99가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100입니다. 시간은 신비한 가치가 있습니다.

 

> 머무르지 않는 지속성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조절하거나 정지하거나 조절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젊은 청년의 세월로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역사 이래로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시간은행(time bank)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젊었을 때 24시간을 쪼개고 아껴서 절약한 시간을 보통, 정기예금 통장에 저금을 해 놓습니다. 시간 주식에 투자도 하고 시간 보험에 들기도 합니다. 생명이 위독하거나 죽음 직전에 그 시간을 찾아서 생명을 연장합니다. 80세 시간을 소유한 사람이 50세에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30년 시간을 사고 팔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지만 일어날 수 없는 공상 입니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시간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관계없이 그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따로 있구나, 그러므로 함부로 살 수 없구나, 결코 삶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생각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 알고 있는 그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

올 한 해도 곧 완전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속눈썹 끝에 와 있습니다.

 

그 계절은 확연히 경험하지 못한 세월입니다.

 

하지만 어제와 같이 태양은 여전히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여전히 오늘 같은 날입니다.

 

오늘 같은 날을 훅 지나가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쳤다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의 진위를 셈하지 못한 어리석은 삶의 결과입니다.

 

나의 세월은 현재 어떤 계절인지 이쯤에서 곰곰이 상고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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