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기생 harlot) 라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성경강좌

본문 바로가기

성경강좌

a (기생 harlot) 라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83회 작성일 21-08-29 22:14

본문

라합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무엇입니까? 라합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보통 기생 라합을 기억합니다. 당연히 이름 앞에 강조된 기생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목회자라면 한두 번 설교의 본문으로 사용할 만큼 널리 알려진 성경입니다. 하지만 기생 라합에 대한 설교 영상이나 설교내용을 보면 거의 동일합니다.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겨서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합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이 신앙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지지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설교자의 몫입니다.

 

그 길을 함께 고민하며 떠나려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정탐꾼(정찰병) 두 명을 여리고로 파송했습니다. 속전속결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리고는 싯딤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중심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 여리고를 정복하지 않고는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했습니다. 가난안 전 지경은 우상숭배와 다신교를 믿는 사회였습니다.

 

여리고는 이미 비상사태였습니다. 여리고를 통치하던 대통령은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 역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리마다 공포가 싸늘하게 녹아있었습니다.

 

여리고에 입성한 정찰병은 라합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주목할 것은 라합의 이름이 성경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라합은 우상숭배하는 아모리 족속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아무 문제의 소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21절에 라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장면이 특이합니다.

 

Then Joshua, the son of Nun, sent two men from Shittim secretly, with the purpose of searching out the land, and Jericho. So they went and came to the house of a loose woman of the town, named Rahab, where they took their rest for the night.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2:1).”

 

라합이라 하는 기생.” 성경은 라합을 기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생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더라도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a loose woman, BBE 성경), 술집을 운영하는 여성 혹은 매춘부, 창녀(harlot, KJV)로 번역했습니다.

 

여호수아 2장에는 라합의 이름이 총 6번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한 번 여호수아 21절에서 그 라합을 라합이라는 기생으로 묘사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함락 될 당시의 기록을 담은 여호수아 6장에는 기생의 집(22), 라합(23), 기생 라합(25)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여호수아 2장과 6장에서 라합의 이름이 총 아홉 번 등장하고 있으며 세 번 기생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있습니다. 기생의 집(2), 기생 라합(1)입니다.

 

아홉 번에서 세 번은 3분의 1입니다. 6을 생각하면 3은 그 닥 커 보이지 않습니다. 숫자로만 생각하면 당연이 6에 신경이 씌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합이라는 이름 보다 성경을 읽는 독자는 자꾸 기생이라는 단어에 꽂힙니다. 그 단어가 갖는 부정적 요소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라합에 대한 기사가 총 세 번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5절은 라합, 히브리서 1131절은 기생 라합, 야고보서 225절도 기생 라합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여호수아 2, 6장의 내용과 모두 연결되는 문장입니다.

 

라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은 기생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기생이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라합을 기생이라는 단어의 안경을 쓰고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이라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 분석이 약화되는 실정입니다.

 

과연 라합은 지속적으로 기생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인물일까요?

 

정찰병이 라합을 만났을 때도 몸을 파는 매춘부였을까요?

 

기생 라합이라는 단정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지속적으로 매춘을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면 합당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느 날 교회에 라합이라는 여성이 출석했습니다. 성품, 외모, 믿음, 빠질 것이 없는 자매였습니다. 헌신과 섬김, 물질로도 이름 없이 봉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교회 안에 가득했습니다.

 

라합은 전에 매춘을 했던 사람이더라.”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라합을 라합으로 보지 않고 라합 앞에 창녀 라합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라합이라는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행실히 좋지 않은 라합, 기생 라합, 매춘부 라합, 창녀 라합 온갖 쓰레기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기생이라는 안경을 끼고 라합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인 라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창녀의 틀로 투영해서 라합을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라합은 견디기 힘들거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완전히 교회를 떠났을지 모릅니다.

 

기생 라합 같은 사람을 현재 교회가 포용할 수 있을까요?

과거를 알고 나서 전과 같이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을까요?

아무 마음에 거리낌 없이 라합의 인격을 존중할 수 있을까요?

라합을 라합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고민해야합니다.

 

그 숙제를 안고 라합을 통해 하나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의 중심 숲을 이번 주에 헤져나갈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