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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1 _ 비유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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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670회 작성일 22-05-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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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문학적 양식이 비유입니다. 영어 비유(parable)는 헬라어 파라볼레(parabol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곁에, 옆에의 뜻을 가진 전치사 파라와 동사 던지다. 두다발로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 비유는 옆에 나란히 두다입니다.

 

두 개의 유사성을 가진 사물, 사람, 상황을 대조 비교해서 거기에 담긴 교훈이나 삶의 의미 혹은 원리를 드러내는 것이 보편적인 비유에 대한 이해입니다. 비유는 직설적 표현은 삼가고 유사성의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비유는 일반적 비유의 개념과는 상이합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비유는 하나님의 마음(복음)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성경의 비유는 단순히 교훈이나 삶의 원리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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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세 가지 형식]

 

예수님이 사용했던 모든 비유 말씀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면 다음과 같은 형식의 비유에 포합됩니다.

 

> 스토리가 있는 비유입니다. 이를테면 선한 사마리아인(10:3-37), 부자와 나사로(16:19-31),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 경구 형식의 비유입니다. 명언, 속단, 격언을 통한 비유입니다. 잠언, 전도서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 직유, 은유의 형식입니다. 직유는 “...처럼, ...같이외식하는 자는 회칠한 무덤 같다입니다. 은유는 “ab이다형식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와 같은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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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세 가지 형식 중에 경구형식의 비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일반적 비유의 해석과 성경의 비유가 다른지를 가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미운 사람이 아니라 미운 놈입니다. 미운 사람으로 표기했다면 덜 미운 상대입니다. 회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꼴도 보기 싫은 사람입니다. 외모, 목소리, 곁에 있는 자체도 싫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싫은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것은 문장 구조 상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준 떡도 되레 찾아와야 될 형편입니다. 굶겨 죽여야 될 상황입니다. 그런데 떡 하나 더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혹자는 미운 놈이니까 떡 하나 더 주어 목에 걸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담이 전하고자하는 교훈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미운 티를 내면 도리어 화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래 마음을 숨기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행위입니다. 미운 사람에게 화를 면하는 유익한 방법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미운 사람일지라도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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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격언에 가까운 말씀이 있습니다.

 

But I say to you, Have love for those who are against you, and make prayer for those who are cruel to you;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원수를 사랑하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미운 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원수입니다. 상대하기 곤란해졌습니다. 원수는 반드시 처벌해야 될 대상입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주는 것이 속편한 것이지 사랑하고 기도까지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할 수 없는 영역을 하라고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설정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것이 로마서에서는 보다 더 확장되어 유권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Do not give evil for evil to any man. Let all your business be well ordered in the eyes of all men.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7).”

 

단순하지 않습니다. 원수보다 더 악한 것입니다. 그 악한 것을 상대하는 방법 역시 악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행위입니다.

 

As far as it is possible for you be at peace with all men.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2:18).”

 

모든 사람에 주목하십시오. 그 모든 사람 안에 악한 사람, 미운 사람, 원수 모두 포함되어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구별하거나 구분해서 편애하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가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Do not give punishment for wrongs done to you, dear brothers, but give way to the wrath of God; for it is said in the holy Writings, Punishment is mine, I will give reward, says the Lord.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

 

내가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강조용법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주권인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제발 믿으라는 권고입니다. 그 사실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세상 끝까지 복음이 증거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비유의 목적과 성경적의 비유 목적은 확연히 상반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말씀으로 인간을 섭리하는 하나님 주권이 뚜렷해졌습니다.

 

 

 

***

[비유의 이중성]

 

비유는 보통 모든 청중이 이해될 만한 것이지만 간혹 특이한 케이스가 등장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올라 해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 뿌렸습니다. 씨를 좋은 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리고 수확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비유를 들었던 청중과 제자들 역시 혼미했습니다. 비유의 명료성이 약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홀로 머물 때 찾아가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물었습니다(13:10. 4:12).

 

And he said to them in answer, To you is given the knowledge of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heaven, but to them it is not given.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13:11).”

 

예수님이 내놓은 답을 보면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에게만 그 말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결국 천국의 비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비유 말씀의 제한성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말씀의 구속론적인 효력은 세계인구 모두에게 복음이 증거된다 해도 모든 세계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For this reason I put things into the form of stories; because they see without seeing, and give ear without hearing, and the sense is not clear to them.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13:13).”

 

알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비유로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사실 그대로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이 생명력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은 돼지 음식과 같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과 구별되게 하는 방법이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비유의 이중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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