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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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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88회 작성일 22-04-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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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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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가 비로소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긴장해야 합니다.

 

From that time Jesus went on to make clear to his disciples how he would have to go up to Jerusalem, and undergo much at the hands of those in authority and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put to death, and the third day come again from the dead.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비로소는 최초로 일어난 사건, 시간을 다룹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최초로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입니다.

 

비로소 가르치시니, 비로소 밝히시니, 비로소 나타내시니, to make clear to his disciples, 제자들에게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쳤습니다. 안개 낀 것 같은 흐릿한 풍경을 선명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각적으로 보는 것처럼 집중 과외를 했습니다.

 

그 가르침은 고난과 죽음, 부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시적 가정법이 아닙니다. 반드시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건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입니다. 영어성경(KJV)은 그 문장에 조동사 MUST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당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부활해야만 합니다.

 

 

 

시점 _ 이때로부터 from that time


그렇다면 최초로 언급된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한 시점은 언제일까요? 마태복음 1621절은 이때로부터 from that time”로 시작합니다. 그 타임 라인은 베드로의 신앙 공백 후, 장소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이었습니다.

 

Now when Jesus had come into the parts of Caesarea Philippi, he said, questioning his disciples, Who do men say that the SSol of man is?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대왕(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통치하던 왕) 아들 중에 헤롯 빌립이 그 지역을 기획 도시로 건설했습니다. 그 도시 이름을 가이사(로마 황제 칭호)와 빌립의 이름을 붙여서 가이사랴 빌립보로 지칭했습니다.

 

그 도시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판(pan) 신전이 있었습니다. 판은 상반신이 사람이었으며 하반신은 염소였습니다. 판은 피리(팬플룻 pan’s flute)를 불며 사람과 동물을 유혹해서 쾌락을 즐기던 신이었습니다. 목가적이며 목축을 다스렸던 신이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우스(신들의 신), 네메시스(율법의 여신)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가이사랴 빌립보는 부, 권세, 우상숭배, 도시 이름에 가이사칭호를 붙일 만큼 황제숭배가 팽배했던 도시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 북쪽 헐몬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반경은 남쪽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렸던 도시가 아닙니다. 굳이 북쪽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획하고 움직였다는 증거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 

제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제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질문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예수님은 직접 자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인자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목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독교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나?”와 같은 질문 유형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주관적 질문이 아니라 객관적이 질문입니다.

 

인자는 신약성경에 88번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 스스로를 인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인자는 메시야의 칭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적 인간을 강조합니다.

 

And they said, Some say, John the Baptist; some, Elijah; and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6:14).”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설문 조사한 내용을 최종 결론을 내서 보고했습니다. 그 대답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세계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해결사,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사람, 철학자, 종교 지도자, 예언자로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선지자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지도자, 통치자의 개념을 생각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까지 올라가서 최초로 구속사에 대해 면밀히 선포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큰 상자, 혹은 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틀 안에 들어있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은 거의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풍조가 그대로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 세상 풍조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도상에서 부정적 행위의 최극단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물질이라는 틀 속에 예수님을 가두려 합니다. 그 예수는 물질과 풍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권세라는 틀 속에 예수님을 가두려 합니다. 예수를 이용해서 명예와 이득을 얻으려고 합니다. 일반 잡신들 틀 속에 예수님을 가두려 합니다. 예수님을 수많은 신들 중 하나의 신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구속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잘 사느냐, 어떻게 하면 권세를 누리느냐, 어떻게 하면 이득을 얻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신앙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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