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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5 _ 두 번째,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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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351회 작성일 22-05-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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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5 _ 두 번째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 


 


Or what woman, having ten bits of silver, if one bit has gone from her hands, will not get a light, and go through her house, searching with care till she sees it?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15:8).”

 

드라크마는 데나리온 혹은 은전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일반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잃었다면 찾는 것이 당연합니다. 돈의 가치가 하루 일당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혼 관습으로 신랑이 신부에게 열 개의 드라크마를 선물했습니다. 그 드라크마는 목걸이, 머리 장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결혼반지와 같은 예물이었습니다.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단순히 물질의 척도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보석이었습니다.

 

빚을 져서 가압류 당해도 채권자는 열 개의 드라크마는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나면 처분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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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크마를 잃어버린 배경이 궁금합니다. 비유에서 성경은 어떤 여성이 주인이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잘못해서 잃어버린 것일까요?

 

놀라운 것은 여기서도 잃다는 한 마리 양을 잃을 때와 같은 의미의 헬라어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직역해 보면 하나의 드라크마가 자의에 의해 고의적으로 주인의 손을 떠났습니다. 드라크마는 양처럼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해석상 난감한 부분입니다. 생명이 없는 물체가 생명이 있는 것처럼 의인화되었습니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였습니다.

 

교회 안에도 잃어버린 드라크마 있습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회개할 것이 없고 의인같이 행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은 부류를 잃어버린 드라크마로 지칭합니다. 무엇인가 종교 활동은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인식에서 벗어나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역, 헌신, 기도, 봉사, 믿음 생활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하고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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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잃은 양을 찾을 때처럼 여전히 이웃을 불러 잔치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일당 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크마의 마지막 결론도 잃은 양의 결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Even so, I say to you, There is joy among the angels of God, when one sinner is turned away from his wrongdoing.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10).”

 

비유 전개상 위 문장에서 죄인은 누구입니까? 드라크마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물질(드라크마)이 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의인도 될 수 없습니다. 비유 내용과 결론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인 여성의 기쁨은 잃은 양을 되찾았을 때 보다 배나 더한 기쁨입니다. 드라크마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드라크마는 스스로 돌아가 자생능력이 없습니다. 억만년이 걸려도 드라크마가 느끼고 인식해서 주인 품으로 돌아갈 확률은 여전히 제로입니다. 반드시 주인이 찾아야만 가능합니다.

 

의식이 전혀 없는 죽은 상태인 드라크마가 어느 날 손, , 머리가 생겨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가능성 없는 얘기입니다. 가정법(if)을 사용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 일어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면, 성도는 설명될 수 없는 그 일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And to you did he give life, when you were dead through your wrongdoing and sins,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회개는 성도에게 있어서 기적입니다.

 

회개는 신비입니다.

 

회개는 기이한 초자연적인 신비입니다.

 

회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국 회개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며 누구나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

누가 기뻐했습니까?”

 

기뻐하는 주체인 주어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양치는 주인, 드라크마의 주인에서, 하늘에서,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천상의 세계 곧 하나님 나라에서 기쁨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사고에는 그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비유적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김경자 작가의 글 중에 승리의 삶을 지난 주 읽었습니다. 짤막한 단편에 크리스천의 성공보다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는지 날마다 순간마다 확인하십시오.

 

벗어나있다면 죽을힘을 다해 해결하십시오.

 

해결방법은 오직 회개 밖에는 없다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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