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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4 _ 첫 번째,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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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모하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30회 작성일 22-05-2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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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parable 4 _ 첫 번째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 

 



What man of you, having a hundred sheep, if one of them gets loose and goes away, will not let the ninety-nine be in the waste land by themselves, and go after the wandering one, till he sees where it is?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은 그 비유의 말씀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왔던 사람들 중 목동이 있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그 이야기의 현실성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백 마리 양 중에서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문제는 주인의 실수로 양을 잃은 것일까요? 아니면 양을 잃어버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서 잃다의 헬라어는 마태복음 1812절은 벗어나다의 뜻으로 누가복음 154절은 파멸하다의 뜻으로 그 양은 고의적으로 무리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사라진 양을 주인이 파악했다면 당연히 주인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한 마리 양도 재산의 일부였습니다. 양을 찾는 주인의 자세는 특별한 것이 없는 보편적인 행로입니다.

 

 

 

**

하지만 그 주인이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찾는 방법이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 보다 들판에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해 보입니다.

 

손익계산을 따졌을 때 아흔 아홉을 지키는 것이 더욱 이익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찾는 방법이 이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풀기 위해 혹자는 우리에 모두 가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돕는 다른 목동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성경을 읽는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사실처럼 증거 되기도 합니다. 이성에 기초된 합리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상력은 이해가 되도록 독자의 생각과 판단에 맞추려는 시도입니다. 조작입니다.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해석할 필요도 없이 문장 그대로 주인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난 것이 펙트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대로 넘어가야 합니다.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되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해소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분명한 사실이 드러나는 묘한 풍경입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주인의 다급한 심정이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들판에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찾아 나섰을까요? 양을 찾으려는 주인의 간절한 심정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과 한 마리 양을 대등한 관계로 주인은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

And when he has got it again, he takes it in his arms with joy.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15:5).”

 

이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양을 찾았다면 보통 목에 줄을 엮어 끌고 오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무게가 있는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즐겁게라는 것은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추는 것으로 기쁨을 최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적어도 주인은 찾은 양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증거입니다. 양을 보석처럼 여겼습니다. 그 양을 사랑하는 구나, 주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돌아와서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베푸는 것도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에 공통적인 기록입니다.

 

And when he gets back to his house, he sends for his neighbours and friends, saying to them, Be glad with me, for I have got back my sheep which had gone away.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15:6).”

 

이해안가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까지 할 정도는 아닙니다. 비용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상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심중을 잔치를 통해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주인이 양을 찾은 기쁨의 최고치가 잔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인의 속마음이 잔치를 통해 가시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

I say to you that even so there will be more joy in heaven when one sinner is turned away from his wrongdoing, than for ninety-nine good men, who have no need of a change of heart.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잃은 양 비유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 결론을 통해 예수님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담았습니다. 상식적으로 그 결론 부분과 비유의 내용전개는 반드시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유의 마무리가 생뚱맞은 결론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이 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 만약 양이 스스로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면 그 문장은 완벽합니다. 그 문장이 완성되려면 양이 원래 있던 장소로 스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양은 돌아가지 않았을 뿐더러 주인이 잃은 양을 찾았습니다. 양이 한 일은 본래의 장소를 이탈했을 뿐, 돌아가는 일에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주인은 그 찾은 기쁨을 이웃과 더불어 잔치를 하며 나누었습니다. 이정도 상황을 파악했다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이라는 미완성 문장이 어떻게 주인의 기쁨으로 연결되는가를 직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이 잃은 양을 직접 찾아도 그렇게 기뻐했다면, 죄인 한 명이 스스로 돌아온다면, 주인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 반어적인 문장 배열입니다. 그 기쁨의 강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기뻐하는 주인에서 하늘의 기쁨으로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잃은 양 비유의 중심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도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변화입니다.

 

회개는 성도에게 기대하는 하나님의 다급한 심정입니다.

 

회개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보석처럼 여깁니다. 결코 왜면하지 않습니다. 존귀롭게 여깁니다.

 

회개는 하나님 기쁨의 최고치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회개입니다.

 

 

 

***

이어지는 말씀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당연히 여기서 아흔아홉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전제된 그 앞 문장을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회개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기대 의인인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 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님 품을 벗어난 상태입니다.

 

회개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불가능합니다. 완벽하다는 것과 의인이라는 행위적 판단으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점잖은 표현 같지만 경고성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탈했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대한 경고입니다.

 

 

 

***

잃은 양이 스스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했지만 끝내 주인에 의해 본래의 장소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은 자주 입술을 열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문장은 무엇입니까?

 

그 회개의 내용을 가지고 얼마나 오랜 시간 지속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변화가 없다면 들판을 뛰쳐나온 잃은 양입니다.

 

죄인 하나가 돌아오면,”

 

그 말씀을 완성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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